캐나다 합창단에선 노래 안 해도 된다고?
아이들이 대접받는 나라
캐나다 학교에 와 보니 학부모들의 참여가 정말 활발하다. 한국에서도 학부모 봉사가 활발한 편이긴 했다.
녹색어머니회처럼 약간의 의무가 섞인 활동도 있었고, 자발적으로 도서관이나 체험학습에 동행하는 봉사도 적절히 균형을 이뤘던 것 같다. 하지만 캐나다는 학부모회가 학교의 많은 부분을 주도하며 돌아간다는 점에서 훨씬 적극적이다. 게다가 이 모든 활동이 순전히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학기 첫날, 솔직히 말하자면 반은 의무감, 반은 호기심으로 학부모회에 참석했다. 250명 정원의 학교에서 학부모회 참석 인원이 겨우 10명 남짓이었다. 새 얼굴이 들어오니 다들 반갑게 맞아 주셨고, 덕분에 얼떨결에 ‘반가운 New Face’가 되어버렸다. 때마침 교장선생님도 이번에 새로 부임하셔서, 나도 한국에서 막 도착했으니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이랑 친해지려고 점심시간마다 합창단을 운영할 예정인데, 아이가 참여해 주면 좋겠다”
라고 웃으며 제안하셨다. 잠깐 생각했지만 어려운 부탁도 아니어서 당연히 오케이!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 다녀온 후에
“Ms. Hof가 점심시간에 합창단을 하신다는데, 재밌을 것 같은데 해볼래?”
하고 물어보았다. 돌아온 답은
“아니, 우린 합창 제일 싫어해!”
라는 단호한 말 한마디. 이럴 수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 무대체질이 아닌지! 이미 교장선생님께는
“Of course”라고 답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봉사활동을 위해 학교에 들렀더니 교장선생님이 활짝 웃으시며 우리 딸이 합창단에 들어와 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아, 잘하고 있다니 다행이네요”라며 어색하게 웃고는 집에 돌아와 딸에게 물었다.
“너, 합창단 들어갔어?”
“어? 그게 합창단이었어?”
알고 보니 딸은 친구들이 Choir 간다길래 같이 놀고 싶어서 따라가 이름을 적고 놀고 있었던 것. 그게 합창단인지 몰랐던 거다. 딸이 설명하길, Ms. Hof가 매일 와서 데려가 주길래 그저 친구들과 노는 시간인 줄 알고 열심히 따라갔다고 한다.
“근데 합창도 안 하던데? Choir가 진짜 합창 맞아?”
“맞아. 너도 노래해야지.”
“아니, 노래가 영어라서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놀고 있었지.”
딸의 이 대답에, 우리 가족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속으로는 ‘아, 그렇지, 우리 딸 영어를 아직 못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바로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께 우리 아이가 영어를 잘 못하는데 합창단 활동이 어렵진 않을지 여쭤보았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은 “No problem!”이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지금 Remembrance Day에 전교생 앞에서 공연할 노래를 연습 중이라며, 일단 노래와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따라 부를 거라고 하셨다. 못 따라 부르더라도 율동만 해도 충분하다고.
정말 놀라웠다. 한국 학교였다면 오디션이라도 봤을 텐데, 여기선 노래를 못 해도 합창단에 있을 수 있다니! 여기는 그저 잘하는 아이 몇 명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아이들이 경험하며 즐겁게 활동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교육의 목표가 참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드디어 Remembrance Day 공연 당일. 학부모회장님 백(?)으로 체육관 맨 앞줄 자리에 앉아 합창단을 기다렸다. 무대에 아이들이 등장했는데, 어쩐 일인지 우리 딸이 맨 앞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동영상 버튼을 눌렀는데, 끝날 때까지 입술이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율동은 열심히 따라 하지만, 노래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공연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노래 잘했네? 재밌었어?”
“응! 너무 재밌었어! 나 Choir 계속하고 싶어!”
입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공연 준비 과정과 무대가 너무 재미있었다는 딸. 순간 다른 학부모들이나 교장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만나게 되는 학부모마다 “우리 딸이 노래는 안 하고 율동만 해서 민망했다”라고 슬쩍 털어놓았더니, 모두 같은 말을 했다. “No problem! 율동 열심히 따라한 거면 잘한 거죠.”
그 후, 딸은 교육위원회 축하 공연과 다른 학교 행사에도 초대되어 나갔다. 맨 앞줄 한가운데에서 노래 없이 율동만 하는 딸에게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내 주었고, 딸은 이를 마치 자신의 성공인 양 신나 했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노래를 못 부르는 아이가 학교 대표로 외부 공연에 나가는 일이 흔했을까? 아무리 저학년이라도 노래도 안 하는데 무대 앞줄에 세워 줄 학교가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캐나다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니까. 모든 아이는 보호받고, 실패하고, 배울 기회가 있는 존재로서 존중받는다. 성인들 모두가 당연히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으니까.
학원차량이 기다리는 교문을 나서자마자 바쁘게 다음 일정을 소화하고, 밤늦게 귀가하면 게임만 하지 말고 숙제하라는 잔소리를 듣는 한국의 아이들. 여기 아이들과는 그 대접이 참 다르다. 어느 나라의 방식이 더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곳 캐나다의 아이들이 한국의 아이들보다 훨씬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