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달픈 대한민국 40대

강남 아파트 두 채, 까짓 거 별거 없더라.

by J mellow

"오빠, 잘 지내지? 내가 회사 앞으로 갈게. 시간 날 때 한 번 보자."

오랜만에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남자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대학 때 조모임을 계기로 친해진 선배는 이성이었지만, 나와 너무도 비슷한 성격 탓에 단 한 번도 남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내게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내가 첫 직장에서 방황하던 시절, 본인의 회사로 오라며 모의 면접까지 준비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잠시 같은 회사에 다니며 더 깊은 우정을 쌓았다. 함께 친했던 또 다른 선배가 있었지만, 그는 몇 해 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다.


광화문. 내가 한때 매일같이 출근하던 곳. 십 년이 지난 이곳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익숙했던 영풍문고와 카페 이마는 그대로였지만, 아이스크림 와플 가격이 세 배로 뛰어있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선배를 종각에 새로 생긴 건물에서 만났다. 그동안 가정사로 복잡한 시간을 보내던 선배는 이날도 피곤에 찌든 얼굴이었다.


"요즘 많이 힘든가 봐요." 내가 운을 떼자 선배는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가 근 10년간 제일 힘든 해였어."


"왜요? 성윤이 사춘기라서요?"


"성윤이도 그렇고, 와이프랑도 계속 안 좋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잘릴 뻔했어. 겨우 다른 계열사에서 오퍼가 와서 내년 초에 이동해."


선배는 5년 전, 임원 승진을 약속받고 전기차 배터리 회사로 옮겼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전기차 시장 악화로 회사 상황이 나빠지면서 승진도 어려워지고, 결국 이직을 결심했다고 했다. 간신히 계열사 이동으로 자리 잡았지만, 한숨만 나오는 듯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나이 드니까 기억력도 안 따라주고... 진짜 사는 게 고달프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묘한 부러움도 느꼈다. 남들이 보기엔 강남에 아파트 두 채를 가진 부부 모두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과 남편이었다. 하지만 선배의 이야기는 그 겉모습과는 달리 깊은 고충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정에서의 그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갔고, 회사에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버텨야 했다. 선배의 고단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내년에는 좀 나아질 거예요. 재건축 투자한 아파트 입주도 곧 하잖아요. 그럼 마음도 좀 편해질 거예요."


나는 선배를 위로하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객관적으로 보면 선배는 내가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다. 반면 나는 강남 아파트는커녕 내 집 마련도 멀기만 하다. 육아에 전념하느라 십 년 가까이 커리어는 정체되었고, 팀장 승진도 없는 채 정년을 채우는 게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내 가족과 보내는 시간, 소박하지만 안정적인 일상에서 나는 충분한 행복을 느낀다.


선배와 대화를 나누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무리 누가 보기엔 화려한 삶이라 해도, 그 안에 담긴 고충과 아픔은 외부에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선배는 그 자신만의 애환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고, 나는 내 나름의 소소한 행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체유심조." 행복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을 떠올린다.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순간의 행복을 음미하며 사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위해 높은 목표를 포기할 수 있는 여유가 어쩌면 진짜 행복의 열쇠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서로 다른 길을 걷더라도, 각자의 삶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찾아가는 것이 결국 인생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로 한복판에서 차를 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