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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감정이 아니라 생각에서 온다

by 어진 식 관점


사람들은 흔히 우울증이 감정의 문제라 여긴다. 하지만 우울증은 감정이 아니라 '생각'에서 온다. 조금 전까지 기분이 좋다가도 시험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우울해지는 것은 '앞으로 내 인생에 희망이 없을 것 같다.'는 부정적인(참이 아닌) 생각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붇다께서 고통의 원인을 '몸'이나 '감정'이 아니라 무지無知, 즉 '지성'과 연결하신 것도 인간의 존재 구조 안에서 감성과 지성이 연결되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으로 '감정'이 아니라 '지성'을 지목하신 것은 인간에게 '지성'이 '감성'보다 근원적인 동력이 됨을 밝히신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 때의 '지성'은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삶의 경험으로부터 보편적인 이치를 터득해 내는, 누구나 가진 인간 고유의 역량을 의미한다.




누가 부정적인 생각으로 우울해 하면,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돌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험이 말해주듯이 '긍정(바른 인식)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 또, 무조건 낙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입사 시험에 낙방한 청년이 생각을 돌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잔뜩 부풀렸다고 해 보자. 그런다고 정말 문제가 해결될까? 취직을 하지 못하면 취업 준비보다 더 큰 문제들이 그의 생에 닥치게 된다. 인생의 행로는 점점 힘겨워질 가능성이 크고, 앞선 실패들도 마음을 짓누를 것이다. 그런데도 정말 생각만으로 이 모든 현실을 이겨낼 수 있을까?


사실, 현실을 외면한 자기최면적 낙관은 지나치면 망상을 일으킨다. 그리고 심해지면 또 다른 정신적 문제로 이어진다.


실제로 2015년, 한 여고생이 스탠퍼드와 하버드 대학에 동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소녀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두 대학이 예외적으로 동시 입학을 허가했을 뿐 아니라,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가 그와의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주요 일간지에 후속 보도까지 이어지며 화제가 되었던 이 이야기는, 그러나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한 소녀의 거짓말 소동임이 드러나며 막을 내렸다. 거짓말임을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 말 그대로의 거짓말과 달리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허구를 자기도 진실이라 믿는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인정받는 현실’을 만들 수 없었던 소녀는 결국 허구를 창조해 그 안으로 도피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바라보는 나’가 ‘현실의 나’를 완전히 왜곡시킨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도 두 ‘나’ 사이의 괴리로 고통받는다. 자신을 과대평가 했다가 실제로 드러난 평가에 실망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열등감을 느끼며 자신을 괴롭히기도 한다.


그러니 현실을 외면한 채 생각만 바꾸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간략한 관찰은 '지성'과 '감성', 나아가 '바라보는 나'와 '현실의 나' 등 많은 요인이 우리의 경험에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 중 하나라도 탈이 나면 조화가 깨지면서 문제가 생김을 보여준다.


그래서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존재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 그 동적 구조와 기능을 알아야 한다. 마음의 구성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어우러져 함께 작용하는지 알지 못하면 정신적 문제에도 근본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 짧은 요약

인간의 경험은 다양한 구조와 기능이 어우러져 작용한 결과로 나타난다. 그래서 그 동적 구조를 이해해야 마음의 문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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