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감정과 마음 에너지 - 4
우주 만물의 존재 이유와 원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유사 이래, 문명이 발생한 곳이라면 어디서나 이어져 왔다. 당연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아시아에서도 이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이루어졌다.
서구 문화는 상대적으로 '외물外物'에 관심이 많았다. 외(外)란 '나의 바깥'을 의미하고, 물(物)이란 '형체를 가진 물질'을 의미한다. 즉, 내 앞에 객체로 드러나 있는 사물의 원리를 궁금해 했다. 그래서 물질을 쪼개어 가기 시작했고, 결국 원자에 닿았다.
그런데 서양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처음부터 '물질'이 아니라 '기氣와 역易'에 관심이 있었다. '기氣'는 지금으로 말하면 에너지라 부를 수 있는 미시 세계를 가리키고, '역易'은 '변화'를 의미한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주역(周易)은 '주나라의 역'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점이나 치는 '점서占書'로 취급되고 있지만, 사실 역(易)은 지금으로 말하면 '에너지 동역학'이라 해야 좋을 동아시아의 물리학을 담고 있다. 물체의 역학을 이해하면 물체의 운동을 예측할 수 있듯이 에너지 역학을 이해하면 에너지의 운동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은 바로 이러한 관심 하에 이루어졌던 동아시아적 탐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 변화'에 주안점을 두어 바라보면 '인간을 보는 눈'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동아시아 인간관을 가장 쉽게 전할 수 있는 비유는 아마도 자석일 것이다. 자석 주변에는 자력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역선(力線)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철가루를 뿌려 보면 곧 존재가 드러난다. 철가루들이 자력선을 따라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 때, 철가루의 형태를 보존하는 힘은 철가루가 아니라 철가루를 통합하는 '자력'에서 온다. 동아시아의 인간관도 근본 정신에 있어서 이와 유사한 것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체가 아니라 그것을 응집하게 하는 기氣, 즉 에너지장이 생명의 본질이라 여긴 것이다.
생이 있는 사람이란 기가 응집한 것이다.
응집한 것이 생(이 있는 것)이고,
흩어지는 것이 죽음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