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를 갖기 전 엄마는
일이 전부인 직업인이었단다.
가정을 갖고 아이를 갖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엄마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특히나 아이를 낳는 일은 더더욱 멀게만 느껴졌어.
육아는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
힘든 희생이라 여겼으니까.
그러나 원이를 갖고
엄마의 생각은 달라졌단다.
원이와 함께 했던 지난 일년여의 시간은
엄마의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어.
원이를 위해 좋은 공기를 마시고
바른 먹거리를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엄마는 일을 우선하며 밀쳐 두었던
소중한 것들의 의미를 되찾아가고 있단다.
늘 바라보던 방향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새로운 곳을 보는 일은
언제나 새로운 깨달음을 준단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의 시간은 어떻게 채워져야 할까...
엄마는 요즘
다시 찾은 몸과 마음의 평화를 바탕으로
또 다른 인생 계획을 써 가고 있어.
원이와 더불어 엄마도 다시 태어난거지.
원이를 낳고 엄마는 진짜 사랑을 배웠어.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귀한 것을 지키는 사랑은 어떠해야 하는지
원이를 돌보면서 배워가고 있단다.
세상엔 많은 사랑이 있지만
어떤 사랑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 견줄 수 있겠니...
나를 잊고 오로지 대상에만 집중하는 사랑은
엄마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사랑이구나.
요즘 원이는 주먹 보고 놀기에 푹 빠져 있단다.
번쩍 허공을 향해 치켜 든 주먹이
자신의 몸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쩌면 원이는
자기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그러니 앞으로 배워야 할 건 또 얼마나 많을까...
스무살이 되었을 원아.
너는 이렇게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배우기 시작해
오늘의 네가 되었단다.
그러니 지금 배워야 할 뭔가를 앞에 두고
두려워 하고 있다면
80일이 되던 때의 너를 생각하렴.
주먹 쥐기부터 시작해
세상의 모든 것을 거침 없이 배워 나간...
원이는 지금도 무엇이든 배울 수 있고
무엇에도 도전할 수 있는
귀한 사람이니까 말이야.
새벽 4시 반,
어김 없이 깨어나 젖을 찾는 원일 재워 놓고
오늘도 엄마는 스무 살의 원이에게 편지를 쓴다.
20년이 지난 어느 날,
이 편지를 보면서 엄마 역시
20년 전의 어느 가을 새벽을 기억하겠지.
쌔근쌔근 잠든 원일 보며
스무 살이 된 원이와 함께 하는 엄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너무 행복하구나.
스무 살 아름다운 숙녀가 되는 그 날까지
원아 부디 건강하게 자라렴.
2006년 10월,
가을 기운이 완연한 어느 새벽 엄마가
이 날로부터 19년이 지나 원이는 정말로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원이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무럭무럭 자라, 그 새벽에 제가 그리던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지금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주먹을 보며 놀던 아이가 스무 살이 되기까지, 원이와 제가 함께 걸어 온 배움의 시간에 관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