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에서 느끼는 슬픔

by 어진 식 관점


얼마 전, 딸이 브런치 앱을 지운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지웠냐고 묻자 돌아온 답은

"예전에는 브런치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감성이 있었는데

요즘은 별로 읽을 만한 글이 없어요."


단박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브런치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3년 전,

내가 브런치에 정착했던 것은

현실세계에서는 접할 수 없는

젊은 세대와 다양한 계층의 속내를 들여다 보고 소통하며

나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창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확히 말하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브런치가 5,60대의 글로 점령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그들은

돈으로(응원하기), 시간으로(좋아요 남발하기)

브런치 상단을 점령하며

젊은 세대의 꿈과 희망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젊은 세대가 브런치를 떠나고 있음을 그들은 모른다.

십년 전쯤 페이스북을 386세대가 점령하면서

젊은이들이 떠났듯이

지금 젊은 세대가 브런치를 떠나면서

브런치의 전체 파이가 축소되고 있음을 그들은 모른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삶과 마음의 속내를 진솔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공간,

영상에 밀려 힘을 잃어가는

글의 위상을 부여잡으려 애쓰는 젊은 작가들의 공간이

이렇게 축소되고 결국 사라져 갈 것이

그래서 나는 몹시도 안타깝다.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지 모르는 무지,

인정을 갈구하던 시대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

젊은이들의 기회를 박탈하면서도

무엇을 빼앗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

그들이 삶을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나는 동시대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왜 전체를 위해

무엇이 더 가치있는 행동인지 생각하지 못할까.

더 가치있는 것을 위해

나의 기회를 양보할 줄 아는

너그러움을 갖지 못할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브런치 구독자수를 늘리는 얕은 기쁨,

응원을 받고 칭찬 댓글을 통해 얻는 일시적 만족감,

그것이 정말로 인생의 황혼기에

영혼이 얻고자 하는 기쁨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지가 고통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