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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백일, 뼈가 여무는 시간

by 어진 식 관점


모든 처음이 그렇듯 엄마가 되는 일도 처음에는 미숙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돌아 보면, 잘했던 일보다 더 잘해야 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릅니다. 잘했던 열 가지보다 잘못한 한 가지가 내내 아쉽고 미안한 것이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아이를 키운 과정을 돌아볼 때,

제일 아쉽고 후회되는 순간은

원이의 첫 백일입니다.


당시만 해도 뭘 잘 몰라서

백일이 아이의 발육에

중요한 시간인 것을 몰랐습니다.

특히 뼈와 근육 등 몸이 형태를 잡는 시기라서

아이를 바르게 잘 뉘어 두어야 하는 것을 몰랐지요.


한여름에 아이를 낳아 답답했던 저는,

가을 기운이 돌자마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산책에 나서곤 했습니다.

그리고 뒤통수를 예쁘게 만들어 준다고

아이의 고개를 좌우로 번갈아 가며

옆으로 돌려 뉘어 재우곤 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아이의 첫 백일이 뼈가 여무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똑바로 잘 뉘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 일 년 동안 아기는

부모가 애쓰지 않아도

자기만의 속도로 자랍니다.

뼈가 여무는 첫 백일 동안

꼼짝 않고 누워만 있다가

뼈가 여물면 뒤집기 연습을 시작하고

매일 다리를 흔들며 스윙 연습을 하던 아기는

어느 날, 힘이 차 올랐을 때

뒤집기에 성공합니다.


(원이는 막상 첫 뒤집기에 성공했을 때

자기도 놀라서 울었습니다. ^^)


뒤집기에 성공한 후에는

팔로 기며 팔 힘을 키우고

그렇게 복근과 허리의 근육이 충분히 발달하면

일어나 걷기 시작하지요.


그 첫 여물음의 시간을

자기 속도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미숙한 엄마였던 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채 50일밖에 안 된 아기를

불편할 유모차에 태우고 마실을 나가거나

예쁜 백일 사진을 남기겠다는 욕심에

앉지도 못하는 아기를

인형에 기대 앉혀 놓고

사진을 찍으며 괴롭혔지요.


(아이가 힘들어 우는 바람에

결국 눈물 맺힌 백일사진을 남기고야 말았는데

사진을 보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중심을 잡느라 발가락에 힘을 잔뜩 주며 애쓰고 있는 원이의 백일사진 ^^;;


저는 첫 백일의 중요성을

원이가 다섯 살 무렵이 되었을 때

어떤 전문가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뒤늦게 후회가 밀려오면서

앞으로는 누가 뭐라든

아이가 자기 속도대로 자랄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겠다고,

절대로 나의 욕심대로

아이를 조형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원칙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간혹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센터에

채 한 달이 되었을까 싶은 아기를 안고 오는

젊은 부모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일이 되어

뼈가 여물고 골수가 충분히 차오르기 전까지

아기의 에너지장은 매우 예민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낯선 에너지와의 교류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있어

절대적으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기를 낳느라 에너지장이 흐트러진 산모와

신생아를 보호하느라

금줄을 쳐 두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던 우리의 전통은

알고 보면 매우 지혜로운 전통입니다.


금줄까지는 치지 않더라도

최소한 백일 정도는

아이를 조용하고 안정된 공간에 머물게 해서

외부 에너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기의 에너지 장까지 고려하면

사실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 때는 감각기관도 여무는 시기인데

아기의 감각 기관은 매우 예민해서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감각을 다치지 않습니다.)


첫 백일은

아직 온전한 형체를 입지 못한 나의 아기가

사람으로 여물어 가는 시간입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백일을 견뎠듯

부모 또한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더 많은 부모님이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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