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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Apr 06. 2023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한 인터섹스 이야기

이제는 온전한 내 인생을 살고싶다.

내가 받아야 하는 수술은 결국 트랜스젠더분들이 받아야 하는 수술과 유사하다.

외부 생식기를 일치시키고, 추가적으로는 내부 생식기관을 만져야하는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런 수술은 태국이 유명하더라..

수술 받기로 내 마음을 정하고나서 제일 처음 한 일은 브로커를 찾는 거였다.

국내에서도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있었으나, 수술 케이스에 있어서 태국에 비할 바가 못됬다.

그렇게 수술 병원을 연계해주는 브로커와 연결되었고,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브로커는 하루에도 몇 통 씩이나 장문의 카톡을 보냈고, 며칠간 나는 서류를 발급받기위해 정말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녀야 했다. 

수술준비와는 별개로 수술을 완료했다는 증명서만 첨부하면 바로 가족등록부 정정을 할 수 있게 법정 서류도 미리 접수를 시켰다. 


대사관을 다녀오고, 은행을 다녀오고, 관공서를 다녀오고 하루를 서류발급으로 다 소모하고 나면

다음날에는 또 새로운 서류들을 요구한다. 

입금을 했다는 입금증, 비행기 항공권 구매내역, 호텔 예약 등.. 

그리고는 태국에 가서 필요한 것들. 먹을 것 등.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여러 준비들로 며칠이 후닥 지나갔다. 


오후 2시 비행기로 출국했던 것 같다. 

태국에는 밤 10시쯤 도착했고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 쯤에는 자정이 거의 다 되어있었다.


호텔로 가서 잠을 청했다.

어처피 내일 병원에 가서 입원수속을 밟으면 수술 후 퇴원때까지는 병원에 있어야했기에 따로 짐을 풀지도 않았다. 

그렇게 다음날 오전 9시 나는 브로커의 손에 이끌려 태국의 한 종합병원으로 갔다.


T라는 의사였고 수술 케이스가 4천건 이상 되는 베테랑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트랜스젠더분들과는 조금 다른 나의 상태를 보며 짧은 영어로 뭐라뭐라 설명을 했다.

너의 몸의 현재 상태는 어떠어떠하고, 우리는 어떠어떠한 수술을 할 것이다 라는 내용인 것 같았다. 

구글 번역기를 켜고, 손짓 발짓을 동원하며 우리는 힘겹게 의사소통을 했고 마지막으로 동의서에 서명을 함으로 나의 수술은 결정되었다. 


혈액검사, 폐기능검사 등 전신 마취를 위한 몇 가지 검사가 추가적으로 진행되었고 

오후 4시에 나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올랐다. 

전신마취 수술은 환자들에게 행해지는 것만 보았지만, 보통은 프로포폴로 가볍게 재우고

근육이완제를 투여하고, 기도삽관을 하는 순서로 진행됬었다.

근데 여기서는 냅다 근육이완제를 먼저 투여하는게 아닌가? 

온 몸이 저려오면서 호흡이 굳는다. 수술대 위에서 다급하게 Wait is this alri...를 외치다가 

마취과 의사의 괜찮다는 싸인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단어는 마취과 의사의 "bee sting." 


삐...삐...삐...

정신이 들면서 제일 처음 들린 소리는 내 몸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달려있는 수많은 의료기구 소리였다. 

바이탈체크를 위한 클립들이 내 손과 발 여기저기 꽂혀있었고, 항생제나 영양성분을 투여하기 위한 주삿바늘도 몇 개나 꽂혀있었다.

다리에는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기 위한 마사지기가 슈-코-슈-코 일정한 소리를 내며 내 종아리를 압박하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내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재기 바빴고, 나는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몇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수술은 잘 끝난건가?' '내 몸 상태는 어떤거지?'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 

수술부위는 붕대로 칭칭 감싸져서 도뇨관만 보일 뿐이었고,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는 잠들었다 깨었다 잠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했다.

중간중간 간호사들이 왔다갔다한 기억들만 단편적으로 났다. 브로커도 다녀갔다고 했다. 


하루가 지났고 이틀째부터는 무시무시한 지루함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출국 전 트랜스젠더분들의 수술 후기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하나같이 죽을 것 같이 아팠다고 했다.

근데 나는 왜 욱씬거리는 정도로 끝인 것인가? 

오히려 도뇨관이 더 불편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틀차부터는 미리 준비해간 노트북과 패드로 밀려온 드라마들을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보는 것도 한 두시간이지 종일 누워만 있자니 좀이 쑤셔서 죽을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이려고 해도 여기 저기 걸려있는 수액관들이 엉켜서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루 못 씻었을 뿐인데 몸도 근질거리는 기분이었다. 

오전 10시쯤 됐을까? 간호사 둘이 수건을 적셔와서는 "clena body." 라고 하며 

갑자기 나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주기 시작했다.

샤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닦아내니 조금은 시원한 거 같았다. 

퇴원할 때 까지 몸을 닦아주는 이 시간이 병원에서의 소소한 기다림중 하나가 되었다. 


사흘째부터는 하루에 10분정도씩 병원 복도를 가볍게 걸으라고 했다. 

당시 해당 층에는 나 외에도 수술을 받은 젠더분들이 몇 분 더 계셨는데 내가 별종인건지 사흘차에 걷겠다고 설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들 아프고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그렇게 걸어다니냐고 신기해했다.


1주일이 지나고 대망의 퇴원일 

오전에 수술해준 주치의 T가 와서 환부를 감아둔 붕대를 풀고 이런 저런 소독을 했다.

지긋지긋한 도뇨관도 내 요도에서 빠져나갔다. 

이 때의 기분은 정말 어찌나 시원하던지.

그리고 한 아름 안겨지는 약봉지. 항생제, 소염진통제,구역억제제,소화제 

정말 약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많은 양의 약을 받았다. 


우버택시를 불러 근처 호텔로 이동했고, 브로커는 나에게 세정법과 소독법을 알려주었다.

하루에 두 번 세정 후 소독을 꼭 해야한다고 강조하며


내가 지낸 호텔은 방콕의 짜오프라야강 주변에 있는 작은 레지던스였다.

근처에는 마트가 있고, 조금 더 가면 큰 쇼핑센터가 있는 곳

어떤 이는 수술 하고 2주일간은 정말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고 했다.

워낙 통각에 대한 역치가 높기도 하지만 나는 호텔 방 안에만 있는게 고역이라 

하루에 30분씩 2번정도 주변 구경을 나갔었다.

하루는 동쪽으로, 하루는 서쪽으로, 또 하루는 강변을 따라

너무 많이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회복에 독이 된다고 브로커가 만류 할 정도로 


하루에 한 번은 꼭 맛있는 걸 먹으러 갔다.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골목에 있는 로컬 식당으로, 쇼핑센터에 있는 분위기 있는 라운지도 

나의 새로운 출발을 자축하는 의미로 매일같이 맛있는 걸 꼭 한 끼는 먹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태국생활에 지쳐가는 2주가 되어갈 무렵 드디어 마지막 경과 진료를 받았고

지금처럼 관리만 잘 한다면 귀국해도 좋다라는 소견을 받았다.


드디어 한국으로 갈 수 있다. 

수술 회복중이라 맘 편히 돌아다닐 수도 없었고, 언어도 잘 안통해 답답한 이 곳을 이제 떠난다.


난생 처음으로 공항에서 환자 서비스를 이용해봤다. 

관련 진단서류를 발권시 제출하면 확인 후 발권장소까지 휠체어로 데리러 와 주었다.

크루 전용 통로를 통해 정말 휘리릭 하고 출국 심사가 끝나버렸다. 


먼저 수술을 한 선배들의 한결같은 조언이 귀국시에는 빚을 내서라도 비지니스클래스를 타라고 했다.

꽤나 장시간의 비행이니 혹시라도 이코노미인 경우에는 자세가 불편해 너무 힘들 수 있다고

그런 조언을 받아들여 나는 귀국 티켓은 비지니스로 끊었고, 덕분에 라운지에서 편히 쉬다가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태국에서 발급받은 수술 증명서를 법원으로 송부하는 일


정말 인터섹스가 뭐라고 말도 잘 안통하는 만리 타지에 가서 이런 고생까지 하고왔나 생각하면 내 인생이 참 가엽고 불쌍했다. 

내가 출국한 사이 수술증명서를 첨부해달라고 보정 요청이 왔었다고 했다. 

눈물대신 가볍게 한 숨 한 번 쉬고, 공항 우체통에서 법원으로 서류를 넣는다.


2주정도 지나고 법원에서 연락을 받았다.

보통은 서류로 통보가 오는데 판사님께서 기다리고 있을 나를 배려해서 먼저 연락을 주신 거였다.

"지금 판결문 작성했습니다. 아마 2~3일 안으로 받으실거에요." 


그리고 이틀 뒤. 나는 여성으로 정정을 허가한다는 판결문을 받았다. 


인터섹스로 사느냐고 고생한 지난 날들아. 힘들었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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