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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Apr 19. 2023

나쁜 남자가 취향입니다

J이야기

J와는 연애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짧은 만남이었다.

2개월 남짓? 

온라인 게임을 통해 만나게 된 그는 나에게 적극적으로 호감표시를 해왔다. 

당시 연애 후 짧은 휴식기였기에 특별히 연애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J는 적극적으로 대시해왔다. 


J와의 첫 만남은 온라인게임 타길드 정모였다.

온라인 한정 극E성향이 되는 나는 다른 길드 사람들과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고 

정모자리가 있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는 초대를 받고 나갔다.


거기에서 처음 J를 만났다.

J는 게임에서는 유명한 랭커였고, 나도 이미 J의 ID는 알고있었다. 

외부 길드원이다보니 짧막하게 자기 소개를 했고, 짖궂은 지인들에 의해 환영주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알콜쓰레기 능가하는 처참한 알콜폐기물 수준이라 술을 입에 한방울도 대지 못한다. 

마시지 못해 난감해하고있을 때 J가 흑기사를 자처하며 나의 술을 대신 마셔주고 소원으로 가볍게 악수를 청했다. 

잘생기진 않았지만 웃을 때 인상이 좋고, 듬직한 체격에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적당히 웃고 떠들고 놀다가 막차가 끊길 시간이 되어 먼저 자리를 일어서게 되었고, J가 배웅해주겠다며 따라나왔다. 

영등포 거리를 걸으며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고, J는 나를 택시를 잡아 보낸 뒤 다시 술자리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아니 들어간 줄 알았다. 


그 다음날 지인에게 "너 J랑 같이 있었어?" 라는 얘기를 들었고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물어보니 그렇게 J와 함께 나간 후 J도 술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알고보니 그도 술에 많이 취해 내 택시를 잡아준 뒤 본인도 택시를 잡고 집으로 가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해명아닌 해명을 해야했고 그 뒤로도 평범한 게임을 하면서 지냈다


어느날 J로부터 게임 귓이 왔다.

'혹시 연극 좋아해요? 나 연극 티켓 받은거 있는데 같이 가면 좋을거같아서.'

 연애중도 아니었고, 심심하던 차에 잘 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본 적은 없는데 궁금하긴 해요. 가보고싶어요.' 

그렇게 J와 첫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J 와 연극을 보지는 못했다.

연극은 대학로에서 있었고, J는 나를 양재까지 데리러 오기로 했었다. 

7시 연극이었고, 양재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은 3시30분이었으나 길이 막혀 J는 4시 넘어서나 양재로 왔고 그와중에 회사로부터 서류 처리 중요 연락을 받아 첫 데이트에 나는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그의 회사로 가게 되었다.

그의 업무 처리가 끝난 건 6시무렵이었고, 가산에서 대학로까지 퇴근시간에 1시간 이내에 주파한다는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서로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가산 근처에서 가볍게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J는 한 중소기업에서 영업팀에 막 들어간 사원이었고, 부모님은 시골에서 개척교회를 인도하신다고 했다. 

하지만 J는 술도 담배도 모두 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목사님의 성실한 아들 이미지는 아니었다. 

회사 동료 4명과 하우스쉐어를 하고 있다고 했고, 월급의 반정도는 학자금 대출로 나간다는이야기도 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선을 그엇어야했다. 

지금의 나라면 현실을 보고 선을 그엇겠으나 어린 시절의 나는 그냥 이 사람이 물질적으로 조금 부족하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고 끝났다. 

받는 월급이 많은 양도 아니고, 남은 학자금 대출이 3년이상이었고, 술과 담배를 모두 즐기며 게임에 아낌없이 현금투자를 하는 사람.

모으는 돈이 있을 리가 전무했다. 

하지만 당시 연애를 끝내고 외로웠던 나는 이사람과 몇 번 더 만나게 되었다. 


J와의 데이트는 재미있는 패턴이 있었다.

그의 월급일을 기준으로 2주일은 주2~3회정도 데이트를 한다.

2주 이후부터는 연락만 주고받는 형태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월급을 받으면 학자금대출, 월세를 먼저 지출하고, 남은 돈으로는 게임에 현질을 하고 그 이후에 남는 돈으로 나와 데이트를 하는 거였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2주정도 지나면 지갑이 얇아지고,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만나고 2개월정도쯤 데이트 중에 나온 이야기였다. 

"너 결혼할 생각 있어?"

J가 물어왔다. 


"응 나 결혼 할 생각 있지?" 


"너 그럼 반지하에서 시작해도 괜찮아?" 

들어보았던 프로포즈중 가장 충격적인 프로포즈였다. 

그 날 이전에도, 그 날 이후에도 이런 충격적인 프로포즈를 들어본 적은 없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굳이 반지하..? 1000/60만 해도 괜찮은 오피스텔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둘이 내면 30이야."

나는 어이가 조금 없어서 대답했다.

 

"그리고 나 아이는 셋은 있었으면 좋겠어." 


진짜 머리를 뭐로 한 대 쎄게 맞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최소 3년은 한 달 월급의 절반은 이자로 나가야하는, 술과 담배를 다 즐기는

경제관념따윈 애당초 머리속에 없는 남자와 반지하에서 시작을 하는데 그와중에 아이도 셋? 


"나.. 애 못낳아. 어릴때부터 몸이 안좋아서 못낳는다고 확진 받았어."

굳이 나에 대해 뭘 그렇게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애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만 담백하게 설명했다.


순간 그의 시선이 흔들렸다. 

"애를.. 못낳아..? 왜?" 


"말했잖아 몸이 안좋다고. 그리고 난 애 싫어해 낳을 생각 없어."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한참 흘렀다. 

형식적인 위로가 오갔다. 

몸이 안좋았다니 힘들었겠구나, 애를 못낳는다니 마음이 아팠겠구나 같은..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아이가 있는 가정을 원해. 미안하지만 너랑은 안되겠다."

J의 이별 통보였다. 


조금은 성장한걸까? 헤어지면 아파야하는데 처음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또 내 인생의 나쁜 남자 하나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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