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손실
술은 값도 싸고 접근도 쉬운 가성비 최고의 마약이다. 술과 마약은 다르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술과 담배도 마약의 한 종류이다. 니코틴은 카페인, 암페타민, 코카인과 같은 각성류 마약이고 알코올은 벤조디아제핀계, 바르비탈계와 같은 다운류 마약이다. 다른 마약처럼 국가에서 제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 문화적 관습이기 뿐이다. 만약 술, 담배를 마약으로 지정해 금지하면 기존 이용자들은 다 범법자가 되는 문제가 생긴다. 덧붙여 국가 차원에서는 술과 담배에 붙은 세금도 걷을 수 없게 되어 세수 확보에도 큰 문제도 생긴다. 국가마다 음주 판매와 사용의 기준이 다른 이유이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야외에서 술을 금하는 나라가 많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제재이다. 술에 관대한 우리 사회의 문화가 알코올 중독자를 양산해 개인과 가정의 파멸과 사회적 문제에 일조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술로 인한 피해를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신체적 손실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술은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는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유전적인 영향이 크니 윗대 혹은 가까운 친인척 중에 술로 여러 가지 손실을 일으킨 사람이 있으면 애당초 술을 멀리하는게 현명한 행동이다.
나의 아버지와 친인척 중에 술로 인해 병을 얻어 문제가 된 분들이 몇 분 계시다. 그렇게 건강하고 튼튼했던 분들이 단지 ‘술’ 때문에 한순간에 건강이 무너져버렸다. 가장의 건강은 한 집의 대들보와 같다. 육체적 건강은 정신건강과도 직결된다. 가장이 무너진 틈으로 가난이 엄습하고, 자녀들의 불안한 삶이 시작된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어린시절 부터 ‘나는 커서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웬걸 앞선 환경이 만들어 놓은 길을 어느덧 자연스레 따라가고 있었다. 이어져 내려오는 습을 끊어야 했다. 끊지 못하면 악습의 고리에 갇혀 윤회 될 뿐이었다.
이 글은 나처럼 중독에 취약한 혹은 이미 알코올 의존상태 이상의 사람들이 대상이기 때문에 술을 음식처럼 대하는 사람은 해당 사항이 없을지 모르겠다. 본인과 가족들이 술로인해 지금껏 문제가 없었고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참고하면 된다.
술은 대표적인 발암물질이다. 건강에 백해무익하다. 중독 성향이 있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음주를 하면 몸의 내장 기관이 망가진다. 장기가 손상되어 육체적인 손해도 크지만 노화도 가속화 되고 남자의 경우 근력 감소도 병행된다. 또한 술을 마실 때 술만 마시지 않는다. 튀기거나 기름진 음식, 자극적인 음식이 자연스레 따른다. 야식은 기본이고 과식도 당연하다. 만병의 근원이 음식이라는 점에서 매일 밤 다방면으로 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다.
음주와 찰떡궁합인 담배까지 곁들이면 피해는 더 커진다. 젊을때는 젊음의 에너지로 독소가 가득한 해로운 환경을 그럭저럭 버텨내지만 이것도 시일의 문제일 뿐 누구나 예외없이 나이는 들고 몸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특별하게 병이 발병하지 않는 시기라해도 음주는 지속적으로 몸과 정신이 피해를 끼친다. 그런 생활 습관으로 병이 안생기는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황인 것이다. 과음을 해도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병으로 표출되지 않았을 뿐 건강했던 몸은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개개인별 임계치를 넘기는 순간 본인의 취약한 부분에서 병으로 발현이 된다. 내가 제일 약한 부분이 터지는 것이다. 과음을 하면서도 임종 직전까지 꾸준히 건강한 사람을 본적있는가? 사람이 다양하니 백에 한둘정도 있을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와 당신은 해당되지 않을 것이 명백하다.
요즘은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다. 과음한 다음날은 안색도 어두워지고, 피부도 까칠해진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알코올 중독 전후 사진을 참고하자. 꾸준한 음주는 10~20년의 나이도 충분히 앞지를 수 있다. 노화를 촉진하는데 이보다 더한 묘약이 없는 듯 하다.
정신적 손실
이런저런 육체적 손실도 크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정신적 피해이다. 술자리가 이어진후 밤잠을 설치는건 기본이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부터 힘들고 짜증이 난다. 전날의 과음은 상큼한 아침 공기에도 출근길을 지옥길로 만들어 버린다.
힘겹게 출근해도 회사에서는 오전 내내 숙취에 허우적거릴 시간이라 일이든 관계든 자신감이 떨어져 일상을 직면하기가 힘들다. 피로에 찌든 몸과 정신 덕에 말과 행동도 소심해지고, 피폐해진 눈으로 타인의 맑은 눈을 감당하기가 힘든 것이다. 술을 한창 마실 때에도 숙취의 불쾌감이 제일 싫었다. 삶의 소중한 시간이 어서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린다. 시간이 삭제되길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며, 어둠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일주일에 서너번의 음주는 일주일에 절반 이상의 아침과 낮 시간을 잠식시켰다.
사회적 손실
술은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전두엽을 지속적으로 파괴한다. 밝고 정상적인 사고 기능이 쇠퇴한다는 말이다. 술을 마시고 전두엽이 마비(혹은 지속적인 파괴)된 상태에서 일으킨 음주운전이나 폭행 같은 각종사건 사고가 연일 보도된다. 술만 아니었어도 생기지 않았을 안타까운 사고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가뜩이나 불확실한 삶에 굳이 불행의 가능성을 확정 지을 필요가 있을까?
시간적 손실
앞서 말한 것 같이 전날의 과음은 다음날 오전 혹은 늦은 오후까지 영향을 미친다. 맑은 정신과 산뜻한 체력으로도 예기치 못한 일들에 대응이 만만치 않은 일상이다. 하지만 음주자는 오늘 사용해야할 에너지를 전날에 당겨 이미 소비해버렸기에 피로한 몸과 불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어그러뜨리고 시작하는게 당연하다. 매번 대출로 생활비를 당겨 쓰는 빚쟁이 인생에 다름 아니다.
삶은 70년 80년이 아니라 오늘 하루다. 그 누가 내일을 장담할 수 있을까? 지구 행성 위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들 중에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반나절 혹은 오후까지 소모시키고서 오늘을 온전히 살았다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인생은 오늘 그리고 지금이 전부인데, 그리 생산적지 못한 지난 밤의 몇 시간은 황금같은 오늘의 시간들을 통째 삼켜버렸다. 다음날 하루를 온전히 보전하는 것은 전날의 의무이다. 오늘에 조금이라도 영향을(피해를) 끼치는 행동은 철저히 삼가야 겠다.
물론 인생이 희노애락인데 삶의 재미 혹은 인간미 없게 단주를 고집하는냐고 말할 수도 있다. 살다보면 늦은 밤까지 술도 한잔하며 허심탄회하게 속내도 드러내고, 관계도 돈독히 할 수 있지 않냐고 말이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음주는 쉽게 습관이 되어 시나브로 주객을 전도시킨다. 관계를 위해 시작한 술이 술을 마시기 위한 관계로 쉽게 변질된다. 특히나 나처럼 중독에 취약한 부류에게는 음주의 득과 실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각자가 삶의 목표와 계획이 있을 것이다. 어떤 목표든 이를 성취하기 위해선 꾸준한 노력이 절실하다. 돋보기를 집중해야 종이가 타들어 가듯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순도 높은 시간을 성실히 지속해 임계치를 넘겨야 한다. 그러나 음주는 하루걸러 하루씩 집중의 방향을 놓치게 만든다. 수전증이 걸린 손으로 돋보기를 들고 있는것이다. 떨리는 손으로는 아무리 오래 들고있어도 불이 붙을리 만무하다. 각오와 결단으로 삶을 재조정 하지 않으면 반복된 일상만 덩그랗니 눈앞에 남을 뿐이다. 시지프 신화의 시지프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관계적 손실
술은 인간사에 영향을 주는 인류의 최대 발명품중 불과 쇠 다음이지 않을까?
술은 딱딱한 분위기도 순식간에 말랑거리게 해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만들어주는 묘약 같다. 물론 다음날 다시 데면데면해질 지라도 술을 마시는 그 시간 만큼은 마음의 벽이 많은 부분 허물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허물어진 마음들이 조심성 없이 너무 바짝 붙어 버린데 있다. 추운날 난로 앞에 다가서면 몸도 마음도 따듯하게 녹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화상을 입는다. 맑은 정신일때는 어느 정도의 거리으로 언행을 조심하는데, 술로 인해 허물어진 경계는 존재간에 충돌을 일으킨다.
‘왜 그런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말을 했을까?’ ‘별 일도 아닌것에 왜 그리 언성을 높였을까?’ 하는 하지 않아도 될 고민들을 안겨준다. 술이 깨고 나서도 한번 금이간 관계는 회복이 쉽지 않다. 한번 뱉은 말은 쏟아진 물이다. 주워 담을 수 없다. 괴로운 시간은 본인 몫이다.
술자리에서 갈등이 없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럼에도 보통 술을 마시면 내가(에고) 더욱 도드라진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 된다. 겸손은 이미 온데간데 없고, 평소에는 하지도 않을 자랑을 참을 수가 없다. 뒷 담화도 빠질 수 없는 안줏거리다. 술자리가 길어질수록 내일은 기억도 안날 사소한 일들에 열을 낸다. 이렇게 후회로 기억될 일들이 술자리에서 만들어진다. 술자리에서 스스로를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혹은 회사 업무 이야기 말고 어떤 생산적인 대화를 한 기억이 있는가? 술을 마시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혹은 나의 소명 같은 것들을 진지하게 대화하고 고민한적은 있는가? 일년전의 술자리는 어떠했고, 십년전의 술자리는 어떠했는가? 일생이 윤회이다. 삶의 소중한 시간이 참 비생산적으로 소모된다.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직원중에 한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아 오늘 술이 땡기는데 누구랑 먹을까? 한번 찾아봐야겠네~” 그때는 이 말이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사람이 좋아 만나고 그 분위기를 편히해줄 재료가 술이어야 하는데 그 직원의 말은 ‘내가 술을 마셔야 되는 시점이 다가왔으니 같이 마실 사람을 구해보자’라는 의미였다. 주객이 완벽이 바뀌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 말을 몇 년 지나지 않아 어느순간 부터 내가 하고 있었다.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며 마지막엔 술이 사람을 마신다’라는 말처럼 술이 술을 마시는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꾸준히 술을 마셨을 뿐 특별한 노력은 없었다. 크게 힘든 일이 없이 자연스럽게 중독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게 술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재정적 손실
재정적 피해를 계산해보자. 한주에 서너번 술자리를 가지고, 담배를 하루 한갑정도 피며, 커피를 하루에 한두 잔을 마신다고 가정해보자. 한 달을 기준으로 술값(한달 12회 x 한번에 4만원) 50만원, 담배값(한갑 약6천원) 18만원, 커피값(3천원x하루2회x30일) 18만원해서 총 85만원이 든다. 1년이면 약 천만원이되며 3% 복리로 계산하면 30년간 원금 3억, 이자 2억으로 약 5억원의 돈이 된다. 이 돈을 은행에 넣어두면 현 금리 5%로 원금 손실없이 월 200만의 이자가 나온다. 당신과 당신 가족의 안락한 노후가 보장된다. 머리 아파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에 뛰어들지 않아도 된다. 원금이 100% 보장되고, 매월 현금흐름까지 지원해주며 건강까지 지켜주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확실한 투자이다. 아픈 몸에 불안한 노후 생활이냐, 아니면 활력 넘치는 신체에 넉넉한 노후 대비냐. 선택은 오로지 당신 몫이다.
3.1.3. 각성
술, 담배, 커피와 이들이 동반된 관계 말고 다른 방식의 놀이가 있는지는 생각을 못했다. 주위에서 쉽게 보고,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이것들 뿐이었다. 놀이라기 보다는 여유롭지 못한 일상속에서 나름의 탈출구 혹은 쉼이 맞겠다. 유학이나 해외 여행은 커녕 국내 여행의 여유도 생각하기 힘들었던 팍팍한 현실이었고, 학자금 대출없이 대학 등록금을 납부할 수 있다는 자체로 감지덕지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부터는 간간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복학을 해서는 취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평범한 삶의 괘도에서 이탈은 낙오 간주되었다. 사회와 주변의 분위기가 그랬지만 사실 내 시야의 한계였다.
물론 지금 다시 20대로 돌아 갈 수 있다면 더 많은 시도와 경험 그리고 도전을 했을 것이다. 팍팍한 현실에 억눌려 잊기보단 현실에서 살짝 비켜나 조금 더 즐겁고 유쾌하게 살았을 것 같다. 지금에서야 과거를 돌이키니 가능한 상상이지 당시엔 앞도 주위도 보이지 않았으니 어쩔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소중한 내 삶이었고 그 시절의 고민과 행동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외부 상황은 마찬가지다. 직면한 과제들은 무겁게 눈앞에서 버티고, 미래는 언제나 흐릿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를 경험삼아 조금은 가볍고 유쾌하게 지금을 살아야겠다. 더 많은 시도와 경험 그리고 도전도 충분히 유효하다는 결론이다.
취준생 시절 미래에 대한 막막함 속에서도 술은 언제나 나를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늪에 빠지고 있었다. 거기가 늪인지도 모르고 한참을 철퍽거리며 놀았다. 음주 횟수가 잦아들 무렵 삶이 조금씩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싫어했던 윗대의 모습을 조금씩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별다른 노력없이 이대로만 있으면 머지않는 미래에 뻘이 목까지 차오를 것이 쉽게 예상되었다. 아차 싶었다. 가슴 깊이 숨을 들이키고 싶었다. 살고 싶었다.
안정된 곳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지고, 집을 사고...다행히 남들 못지않게 부족함 없이 잘해나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깊은 늪에서 홀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가야지 생각은 들어도 늪에 빠진 발이 옴짝 달싹 하지 않았다. 아니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젊음이 무기였던 시절이고 여러 관계가 끊임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끊으려는 노력보다 줄이려는 노력을 꾸준히 했다. ‘일주일에 세 번 이하로 마시고, 한번 마실땐 소주 한병만 마시자’라는 계획을 수도없이 세웠다. 물론 삼일천하로 자존감에 상처만 입고 ‘내가 그렇지 뭐’로 되돌아 오기 일수였지만 말이다.
실패를 거듭하며 밤마다 술자리를 찾아다니는 중에도 ‘이건 아니야’ 라는 목소리가 때로는 작게 때로는 크게 내 속에서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날은 그 목소리를 따라 집 근처 알코올 중독센터를 제 발로 찾아갔다.
센터 방문은 기대 이상이었다.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두 번 상담을 하면서 음주 일지를 적기 시작했다. 음주의 갈망이 언제 일어나고, 갈망의 강도가 어느정도 이며,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욕구가 잦아드는지 갈망에 대한 심리 상태와 생각의 변화를 상세하게 적어나갔다. 물론 갈망의 자각과 노트 작성과는 별개로 술은 지속적으로 마셨다.
이삼십대에 비해 체력은 조금씩 떨어져가고 맞벌이로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일상이 고단하던 차에 다행히 부모님께서 인근으로 이사를 오셔 자녀 양육을 도와주셨다.
오신지 2개월 정도 되었을까? 그 전날도 주말을 앞두고 여느때처럼 과음을 했다. 늦은 오전까지 잠을 잤는데도 피곤해서 애기들을 피해 낮잠을 자기 위해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부모님 댁 작은방에 멍하게 누워있다가 ‘그간 고생만 하셨고 이제야 삶의 여유를 조금씩 찾아가고 계셨는데, 고향도 지인들과의 관계도 모두 포기하고 아들을 도와주러 낯선 타지에 오셔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신데 내가 숙취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울렸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집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그자리에서 “나는 앞으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에게 “아빠 술 끊어요”라고 수첩에 적어달라고 했다. 그 수첩은 단주 노트로 사용했다. 그날 이후로 6년 차인 지금까지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고 있다. 아니 술자리에서 물로 착각하고 마셨다가 뱉은 적은 한 번 있다.
‘한 번 끊어나 볼까?’가 아니었다. 그간 이어져온 술에 대한 고민과 음주 일지그리고 부모님의 희생이 맞물려 크게 각성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술이라는 강력한 중독 물질을 끊어냈다. 그리고 나의 삶은 단주 전과 후로 나눌수 있을 정도로 내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