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애벌래
산골의 일상
아침에 일어나 어씽을 하며 운동하는 중에 둘째가 깼다. 펜션지기께서 텃밭을 편히 이용하라는 응원에 힘입어 아침마다 텃밭에서 오이와 고추 방울토마토를 따서 아침 식사에 포함시킨다.
간밤의 폭우는 그쳤고 매미는 울며 계곡 물소리는 더욱 힘차다. 순간순간 수시로 행복을 느낀다. 나에겐 과분한 행복. 아침마다 세포가 살아나는 듯하고 내 몸이 자연과 감응하는 기분이 새롭다. 도시 생활이 그리울 시기도 오겠지만 아직은 그 시기가 먼 것 같다.
식사는 펜션 데크에서 한다. 바깥이 시원하기도 하고, 나무와 계곡을 풍경으로 자녀들과 얘기하며 천천히 먹는 식사가 행복하기에 그렇다. 벌 한 마리에도 호들갑을 떨던 자녀들이 며칠 사이에 다양한 곤충에 적응하고 있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이 시기를 돌이킬 때 이시간의 추억이 풍요로울 것 같다.
펜션에는 두 마리 강아지가 있다. 행복이와 사랑이 인데 첫 만남은 어려웠다. 어찌나 짖어대는지 친해질 수는 있을까 싶었다. 사랑이는 지인에게 받은 7년 차? 강아지인데 같이 받은 새끼 중 한 마리가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가서 우울증이 심했다 한다. 하지만 사랑이를 2년 전에 유기견 보호소에서 분양받은 덕에 우울증이 치료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두 녀석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 먹이를 주면 다가오긴 하는 단계이다.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중이다. 읍내 나갈 때 강아지 간식도 사 와야겠다.
고독
외로움과 고독을 조금 걱정했지만 16년간의 바쁜 직장생활과 다양한 인간관계의 피로감으로 고독이 오히려 아늑하다. 도시의 각박함과 타고난 성격의 콜라보 덕에 조급해진 성격이 이제야 조금씩 누그러드는 기분이다. 아! 나는 도시에서 얼마나 조급하고 옹졸하게 살아왔던가.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편협한 생각 속에서 말이다. 시간은 공간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고 그랬던가?. 이곳의 시간은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흐르는듯하다. 나의 최대 단점인 조급증이 조금씩 치료되는 기분이다. 아직은 고독이 좋다. 아니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꼭 필요한 전환점이 바로 이곳의 시간이다. 그 시작문이 고독이며 고독을 승화시켜 새롭게 그리고 귀환할 것이다.
금선탈각.
나비는 애벌레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 자녀들이 입학한 학교에 2학기 수업 일정을 발표한다는 학부모 설명회가 있었다. 수업 일정도 궁금했지만 실은 이곳의 학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가 더 궁금했다.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여럿 있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 년 전부터 이곳을 찾아오신 분들이 다수였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학부모들 까지 꼭 어디선가 한 번은 뵌 것 같은 인상이다. 시간이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는 것 같다. 오늘은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펜션으로 왔다. 재미있는 일들이 생길 것 같다.
성공, 진급, 돈이라는 목표를 향한 대열을 이탈한 모습에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는 요즘이었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에 문득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