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선배(트렌서퍼)와의 만남
ep-17. 이곳 산골. 오감으로 체험하는 계절의 변화.
도시에서는 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할 만큼 언제나 분주했다. 말 그대로 바쁠 망忙(바쁘다함은 마음이 망한 것이다!) 거리의 풍경이라고 해봤자 출·퇴근길 집에서 지하철까지 걸어가는 풍경이 전부이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는 대부분의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베란다 밖은 차 불빛만 어른거렸다.
냉·난방이 완벽한 사무실은 사계절이 더더욱 단조로워 출·퇴근길의 기온으로 계절을 가늠할 뿐이다. 물론 도시에도 가로수가 있고 꽃도 피고 졌겠지만 회사 일과 이것저것 복잡한 머릿속은 스쳐 지나가는 경치에 마음을 줄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강원도 산골. 이곳은 사계절이 살아있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2학기 개학을 앞둔
한여름이었다. 뜨거운 햇살에 숨 막히는 더위를 계곡에서 식히다 고개를 들면 울창하고 무성한 나무들이 푸릇푸릇한 잎을 가득 품고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귀에는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와 매미 소리가 힘차게 어우러져 도시의 시름을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어느덧 가을. 요즘은 아침에 문을 열면 청량한 기운과 함께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산들은 매일매일 더 짙어지는 화려한 색감의 옷을 갈아입는다. 낙엽은 바람에 날리고 기온은 금세 떨어졌으며, 밤 비라도 내리면 이 계절만의 쓸쓸함이 이곳저곳에서 흠뻑 묻어난다. 자녀들은 낙엽을 밟는 바스락 거림이 재미있는지 불러도 대답 않고 한동안 밟아 댄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 가치는 시간. 자유 그리고 체험(경험)이다. 이것들의 성격은 다르지만 내게는 구분되지 않는 한 덩이 같다.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돈이 있다는 전제하에 돈 부자 보다 시간 부자가 훨씬 더 부럽다. 물질은 무한하고 생은 유한하니 당연히 비교 불가하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거나 호기심이 가는 분야에서 자유롭고 마음껏 경험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곳 산골 펜션과 자녀들이 다니는 시골 학교의 4계절은 우리에게 백점이다. 산골의 첫해여서 유독 더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나도 자녀도 온몸으로 오감으로 이 계절을 맛보고 즐기는 중이다.
울긋불긋한 산사에서 바람에 날리는 낙엽 아래서 따듯한 차 한 모금이면 이곳은 천국이 다. 의식적으로 행복한 순간을 자각하려는 요즘, 소확행이 하루에도 도대체 몇 번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남아있을 겨울의 눈과 봄의 새싹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인생 선배(트렌서퍼)와의 만남
네이버 은오 카페(은퇴 후 50년)를 통해 알게 된 지인이 인제에 계셨다. 그분이 쓰신 글을 읽다가 내가 쓴 글이 아닌가 착각을 할 정도로 비슷한 생각에 놀랍고 반가웠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내가 바라던 삶의 초입에 있고, 그분은 그 삶과 생활이 십여 년이 넘었다는 점이다.
차로 30분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인 것을 알고 언제든 차 한잔 마시로 오라는 말씀을 주셨다. 나는 내 생각에 확신이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안함과 불확실함은 어쩔 수 없어 스스로를 다독이던 요즘이기에 꼭 한번 뵙고 싶었다. 얼굴을 보고 지혜를 듣고 싶었다. 시일을 늦출 필요가 없어 자연스레 일정을 잡고 방문했다. 부모님 또래의 내·외분이 정말 처음 보는 멋진 대저택? 에서 환대해 주셨다.
대화의 요지는 내가 생각하는 삶에 대한 물음과 답변이다.
문 : 많은 사람들이 왜 실행을 못하나?(시골과 도시의 장점을 취하는 삶)
답 : 대다수가 짜인 판(사회가 강요하는 삶)에서 다른 방식의 삶을 생각하지 못한다. 생각을 해도 용기를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더더욱 힘들다.
문 : 설마 대부분 생각 못한다는 게 맞나?
답 : 생각을 하는 두부류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 임박한 이들. 또 다른 부류는 최근에 장례식장을 다녀온 이들이다. 다만 그들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예전의 생활을 반복할 뿐이다.
문 : 그간의 고민 들로 내 생각이 확고하나 불확실함과 불안이 따른다.
답 : 큰 틀을 정했으면 귀는 열되, 좌고 우면치 말고 가라. 달리다 주위 사람이 안 보인다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건 내가 1등이라는 말이다. 뒤도 옆도 보지 말고 앞을 향해 성실히 달리면 된다.
문 : 퇴사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은?
답 : 소비 대비 수입이 많을 것. 소비는 줄이면 된다. 하기 나름이다. 과소비를 삼가고 텃밭을 이용하면 생활에 크게 무리가 없더라.
문 : 시간의 자유를 통해 소명을 찾고자 한다. 아무래도 생업과 연결되면 좋겠다.
답 : 시골에 기회가 많다. 농촌학교 특별전형, 대학등록금 지원. 농업 관련 사업자금 등 아는 만큼 활용할 수 있다.
문 : 농업 관련 사업은 농사일을 말하나?
답 : 농사일은 외국인 근로자가 한다. 나는 사업을 말한 것. 40대~50대면 도전에 충분한 나이다.
문 : 시골에서 병원 문제는?
답 : 지금껏 크게 문제없었다. 병원 가까운 도시에서 오염된 공기와 스트레스 속에 사느니 이곳에서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건강하게 살겠다. 매년 5~10프로씩 건강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도시에서 운전하나 만 봐도 스트레였는데, 이곳의 시골길은 언제나 유쾌한 드라이브다. 청정한 자연환경과 맑은 공기기 그리고 스트레스 없는 삶은 병원까지의 물리적 거리를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문 : 서울은 다녀오시는지?
답 : 볼일이 있어 잠시 가면 갑갑하고 탁해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당일 온다
문 : 좋으신지?
답 : 반대했던 집사람이 가장 좋아한다. 제일 큰 관문이 부부의 동의. 우리 부부는 매일 행복하다.
문 : 초대에 감사.
답 : 언제든 오라. 사람 집에 사람이 오가야 한다. 빈 방도 있으니 자고 가도 된다.
역시 고수를 만나면 막힘이 없다. 대화가 단순하고 쉽다. 열린 마음과 눈 빛을 통해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이 유쾌했다. 다시금 내 생각에 확신을 얻고, 응원도 받고 왔다.
오는 길에 직접 재배하신 고추, 무, 상추를 한가득 뽑아 주셨다. 무가 너무 크고 요리할 방법이 생각이 안 나 펜션지기께 드렸더니 다음날 무김치로 만들어 주신다. 그렇다. 이곳은 천국이다. 펜션에 먼저 도착해 천사들의 하원을 기다린다.
지난 여름 팬션에서..#여행 #농촌유학 #5도2촌 #귀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