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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틈새 07화

아직 자라는 중입니다.

by 담은

나는 내년이면 쉰 살이 된다.

그런 나는 아직 자라는 중이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아마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나?.',

'내면을 성장시키는 중인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성장은 그런 근사한 성장이 아니다.

나의 성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아는 수평으로의 성장이다.


어제 아침, 습관처럼 체중계에 올라섰다.

디지털 숫자가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 한동안 멍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그제야 옷이 왜 점점 작아지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땅이 넓다지만, 이렇게 옆으로 쭈욱 성장하고 있었는지는 몰랐다

다리 수술 후 운동을 하지 못한 탓일까?

요즘 너무 바쁜 일상에 건강을 챙기지 못한 탓인 걸까?


요즘 내 하루는 초침처럼 바삐 돌아간다.

에세이 단행본을 편집하고,

11월과 12월 말에 있을 3개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비록 개인전은 아니지만, 몹시 분주하게 긴장하며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사무실에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틈틈이 만든 책갈피를 서점에 위탁해 판매도 한다.

게다가 불성실하게나마 낭독모임에 참여하고 있고,

숨 막히듯 중간중간 겨우 시간을 내어 글을 써 내려간다.

이렇게 내 하루는 눈 깜짝할 새 흘러간다.

밤이 되면 파김치가 되어 침대에 쓰러지고,

아침이 되면 마지못해 몸을 겨우 일으킨다.


주변 언니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사냐? 피곤하지 않아?"

당연히 너무 피곤하다.

어떤 날은 힘에 부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지도 몰라'라는 절박함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 앞에 당당하게 멋지게 서고 싶다는 열망,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성장의 마음이 나를 앞으로 밀어붙인다.

이 모든 것들은 내 가치를 단 1cm라도 더 키우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라고 있던 건 나의 체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한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마음의 성장도,

꿈을 향한 전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담아낼 '그릇'

곧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 깨달음이 곧 포기를 뜻하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고, 이루고 싶은 일들도 많다.


다만 이제는 안다.

곧게 서 있기 위해선 단단한 뿌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울어진 몸 위에 어떤 열정도 오래서 있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시 결심했다.

아무리 바빠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건강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스스로를 더 많이 사랑하고 돌보자고.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조금씩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고,

충분한 잠을 자서 지친 몸을 회복시키자.

내가 바라는 성장은 이제 단순한 '성과'가 아니다.

속도보다 방향, 성과보다 존재를 돌보는 성장이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나를 더 단단하게 하는 방향으로

언젠가 다시 두 발로 꼿꼿이 설 날을 위해

나는 지금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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