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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틈새 08화

편견의 시선

by 담은
사람의 마음은 빙산과 같다.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은 빙산의 일각일 뿐, 그 아래에는 말하지 못한 상처와 고통, 설명할 수 없는 이유들이 숨어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차가운 빙산은 위에서 보면 그저 작고 하얀 덩어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는 상상도 못 할 거대한 덩어리가 숨겨져 있다.

우리가 눈으로 불 수 있는 건 전체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모습, 들리는 말. 표정 몇 개로 그 사람을 전부 안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한 오해일 수도 있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미소보다 무표정이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을 때가 있으니까.


나도 역시 그랬었다.

예전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더 쉽게 판단하고, 충고하고, 조언하려 했다.

그 사람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좋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빌어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이다. 생각의 폭이 자기 밖까지 확장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언니가 내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언니는 진심이었다. 내가 걱정이 되었고, 안쓰러웠고, 그래서 어떻게든 나를 도와주고 싶었던 걸 것이다.

그 마음이 고마웠기 때문에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날 언니의 조언과 충고는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프게 다가왔다.

듣는 내내 고통스러워 울컥 눈물이 고였지만,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언니가 미안해할까 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언니가 해준 말들은, 이미 내가 수없이 생각하고 되뇌었던 것들이었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고, 안간힘을 써가며 버티고 있던 문제들이었다.

그 말을 다시 누군가의 입을 통해,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들었을 때, 그건 더 이상 도움이 아니라 또 다른 상처로 다가왔다. 나는 언니의 말을 끝까지 듣기 힘들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의 입장을 조금만 더 이해해주지 못할까?"

"왜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건 생각해 보지 않는 걸까?"

그리고 곧이어 나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다.

"혹시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몰랐던 적은 없었을까?"


그 이후로 나는 사람을 볼 때 한 걸음 물러서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그 안에 설명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는 걸, 나 또한 그런 사람이란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타인을 쉽게 판단한다.

"왜 저렇게 말하지?"

"왜 저렇게 행동하지?"

같은 말들은 어쩌면 편견에서 출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이야기, 듣지 못한 이유, 상상도 하지 못한 상처가 숨어있을 수 있다.

마치 빙산 아래 잠겨 있는 얼음덩어리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무뚝뚝함은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일 수 있고, 누군가의 침묵 안에는 도저히 꺼내기 힘든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유를 안고 살아간다.

그 이유를 모두 알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이 한마디가 이해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이해는 결코 앎에서 시작되지 않는데.

이해는 모름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그 사람을 잘 모른다'라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편견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그 사람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조언이나 충고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너그러운 시선 일지도 모른다.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위로가 된다.


우리는 모두 빙산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품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쉽게 말하거나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도, 이해하려는 마음은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해줄 수 있다고.


편견 대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말을 재촉하기보다, 곁에서 조용히 지켜주는 사람이기를.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말로 다 하지 못할 큰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그 마음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조금 더 다정해지기를 나는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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