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못된 습관 하나가 있다.
감당하기 싫은 감정이 고개를 들면,
나는 늘 시선을 다른 곳을 본다.
문제를 바로 보기 싫어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내가 보이지 않을 곳으로 숨어버린다.
이 습관은 나의 잘못된 신념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적에 온 세상이 모두 나를 미워한다고 믿었다.
아빠의 눈은 늘 서늘했다.
그 속에 숨어 있던 폭력의 그림자.
그리고 폭력에 지친 엄마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만 생기지 않았으면...."
그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얼음처럼 박혔다.
설풋 잠든 나의 얼굴에 닿은 차가운 손길.
그때의 냉기와 서러움이 마음에 서렸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생기는 바람에 엄마가 아빠랑 결혼했고,
그 결혼이 불행했으니 나는 엄마의 인생을 망친 건 나야'
'나 때문에..'라는 죄책감은 어렸던 내 영혼을 짓눌렀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어느 날은
그게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기도 어린 나이에
누군가로부터 말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그날 이후, 내 몸은 얼어붙었다.
침묵이 나를 감싸는 감옥이 되었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그 후로 나는 사람을 피해 다녔다.
나는 내가 수치스러웠고 부끄러웠다.
사람들의 작은 눈빛과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흔들렸다.
늘 마음은 사시나무 떨 듯했다.
"사랑받지 못할 아이"
그 문장이 내 안에 뿌리처럼 박혔다.
추운 마음은 늘 움츠러들었다.
좋아하는 것도, 원하는 것도 의미를 잃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도 나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믿게 되었다.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장 깊은 곳에 품게 되었다.
가을이 지나가버린 거리를
찢긴 날개를 파닥거리는 나비처럼,
가녀린 숨을 내쉬며 버텼다.
관계 속에서도 언제나 한 걸음 물러서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때로는 인생의 방관자가 되었고,
때로는 나 자신을 지워버렸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힘들어도
도망치는 게 더 익숙했다.
어느 날,
그 믿음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다.
처음으로,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정말 비겁하다.'
더는 비겁해지고 싶지 않랐다
나의 고통들과 맞서고 싶었다.
나에게 일어났던 그 모든 슬픈 일들
아빠의 폭력, 엄마의 무관심, 어린 날의 상처도,
그 어떤 것도 내 선택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너무 일찍 상처를 배운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 깨다음은 오랜 어둠 속에서
조용히 스며든 볕뉘 같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숨을 깊게 들이쉴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를 묶어두던
잘못된 믿음의 사슬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나를 아프게 한 모든 일이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여전히 나이고,
그 사실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걸.
과거의 잘못된 믿음들은 더 이상 나를 가두지 못한다.
중요한 건 지나간 어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이다.
이제 나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리고 천천히
찢겨 나갔던 날개를 편다.
상처로 얼룩진 그 날개 위로
새로운 빛이 번져간다.
나는 날 것이다.
작고 연약하지만,
누구보다 단단한 나비로
따뜻한 바람이 이끄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