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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틈새 13화

영원히 마흔아홉의 너에게

by 담은

탁, 불이 꺼졌다.

순간, 세상 전체가 숨을 멈춘 듯 고요해졌다.

공기의 순환도 멈춘 듯 답답한 공간, 그 안에 까만 리본이 드리워진 너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 너는 온 세상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래서일까.

어디선가 "야"하고 웃으며 들어올 것 같았다.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나는 어떤 걸 믿어야 하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커튼이 올라가고, 하얀 가루만이 차가운 화장대 위에 남아있었다.

그 순간, 나는 숨을 제대로 들이쉴 수 없었다.

정말 이게 현실일까?

저 하얗게 남은 것이 너인 걸까?

의문이 마음에 닿자마자 참아두었던 눈물이 또다시 터져 나왔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나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홀로 서 있었다.


며칠 전 너는 말했다.

"아휴!~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오십이네. 벌써 오십이라니. 정말 우울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너의 시계는 이제 멈춰버렸고, 너는 이제 영원이 오십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서 너는 기뻐하고 하고 있을까?

아니면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같이 늙어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을까.


화장터의 공기는 기묘하게 차갑고 무거웠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공간에서 누구는 살아서 죽은 이를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한다.

죽은 이도 살아있는 이를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할까?

마지막 숨이 멎는 그 순간에도 남겨질 남편과 아이들을 걱정했을 너를 생각하니 마음이 또다시 미어졌다.


"다시 한번만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절망과 체념이 뒤섞인 너의 남편이 내뱉은 말이 온몸을 찢듯 아프게 들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네 목소리를 이 자리로 다시 데려올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발걸음, 흐느끼는 숨소리까지 모두 네 부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나는 유독 홀로 시간 밖에 놓여 고립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잃는 것과 같다.

그 친구로부터 온 세계가 온전히 사라져 버리는 일.

나는 한 친구를 잃었다기보다 너라는 세계의 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 문을 통해 들어오던 빛, 너만의 시선, 너의 웃음, 너의 말투가 갑자기 모두 꺼져버렸다.


네가 없다는 사실은 먹먹한 침묵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너 없는 공간 속에서 슬픔이 조용히 어깨 위로 내려앉았고, 시간은 나만 두고 흘러가는 듯했다

네가 사라진 세상과 아직 너를 잃었다고 믿지 못하는 내 세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틈이 생겼다.

그리고 그 틈에서 또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너를 보내자마자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미뤄둔 밥을 먹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내게 주어진 일정을 살아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하루를 보냈지만, 너는 모양을 바꾸어 네가 남긴 빈자리 곳곳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숨을 고르는 순간마다 너의 부재가 다시 선명해졌다.


나의 세계는 이제 너의 세계와 주파수를 달리했다.

예전에는 같은 파동으로 울리던 우리였는데

이제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나의 세계는 그대로인데 너만 멈춰버렸다는 사실이 늦은 밤 불을 끄고 눕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깊이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흔적은 여전히 내 안에서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다.

그 진동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너의 세계와 아직은 이어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래서 마음속 어딘가에 네가 열어 두었던 작은 문을 불러낸다.

언제나 환하게 웃던 너를 떠올리며

너를 영원히 잃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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