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도록 믿었다.
사람들이 결국 나를 싫어하게 될 거라고.
아무리 잘해줘도, 아무리 진심을 다해도,
언젠가는 내 안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꼬투리를 찾아내면,
그걸 핑계 삼아 나를 떠나갈 거라고.
그래서 처음엔 나를 고치려 했다.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은 내 모습'을 골라내 지웠다.
말투를 바꾸고, 감정을 숨기고, 좋아하던 것들마저 조심스럽게 포기했다.
'이렇게 하면 이제 괜찮아 보이겠지?'
'이만큼이면 날 싫어하지 않겠지.'
'이 정도면 나를 떠나지 않겠지?'
그런 바람을 품고, 나는 나를 깎아냈다.
하나씩, 하나씩.
하지만 그 희망은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부서졌다.
사람들은 내게 왔다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다시 그들의 세계로 돌아가버렸다.
나의 영혼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거울 속 나의 눈빛도 텅 비어갔다.
점점 더 슬퍼지고, 지치고, 외로워졌다.
그래서 이번엔 내 모든 것을 주기로 했다.
시간도, 애정도, 따뜻한 말도 아낌없이 건넸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밤새도록 곁을 지켰고,
사소한 부탁에도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건넨 온기를
당연한 듯 받아 말없이 떠나갔다.
고마움도, 작별인사도 없이 등을 돌렸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늘 공허했고,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사람에 대한 염증이 생겨났다.
내 마음을 가볍게 여긴 사람들,
진심을 일회용처럼 소비한 뒤 떠난 사람들.
나는 단지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사람들은 나의 마음을 잔인하게 저버렸다.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았다.
겉으로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뒤로 계속 두꺼운 마음의 벽을 쌓았다.
그 안엔 아무도 들이지 않겠다는 단단한 결심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나는 깊은 어둠 속에 혼자 뭍혀지냈다.
누구에게도 다가가지도 않았고,
누가 다가와도 얼른 문을 닫았다.
상처받기 싫어서,
또다시 버려지기 싫어서.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점점 단단해졌고,
그 어둠은 내 은신처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말했다.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너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야.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 나쁜 거지.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속 어디선가 '툭'하고
오래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따스함이 스며들었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어둠이 아니라 세상을 비추던 '햇살'였다는 것을.
내가 따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곁에 머물렀고,
그 따뜻함 속에서 잠시 쉬었다가
자기 길을 따라 나아갔다는 것을.
그동안 나는 '떠남'만을 바라보며 아파했지만,
하지만 사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먼저 '와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소중한 방문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계절처럼 흘러가고
상황에 따라,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사람들이 나를 떠났다.'는 사실만을 붙잡고 있었지만,
그들이 떠난 이유는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밝음이 그들 안의 부족함을 비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는 '사람들이 나를 떠났다'는 사실만을 반복해 떠올렸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나 같은 사람은 결국 사랑받을 수 없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이 떠난 이유는,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밝음이 그들 안의 부족함을 비췄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비추는 빛이 누군가에게는
스스로의 텅 빈 마음을 자각하게 하는 거울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빛에 끌려온 사람은
결국 닮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질투하게 되었고,
나를 통해 진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자,
그 빛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것일지도 모른다.
빛은 때로 위로가 되지만,
때로는 감추고 싶은 그림자를 드러내게 한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산의 상처와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빛 앞에서 도망치게 된다.
그러자 떠난 사람들이 안쓰러워졌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였지만 그들도 어쩌면 나의 밝음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읆까 걱정이 되었다.
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을까?
그런 생각에 이제는 알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모든 관계가 영원할 수도 없다는 것을.
그것이 나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단지,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서의 무게가 다를 뿐이라는 걸.
햇살은 모든 만물을 따뜻하게 품지만,
아무도 해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말없이 늘 그 자리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어준다.
나는 다시 내 안의 빛을 내기로 했다.
다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다시 마음을 건넬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이 떠난다고 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여정이 그 지점에서 끝난 것일 뿐이니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서툴고, 상처 투성이고, 가끔 흔들리지만
내 안에 분명히 따스한 빛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나는 이제 햇살처럼 살고 싶다.
잠시 머문 이들에게 온기를 나누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내 자리를 지키는 존재.
이제는 누구의 인정이 없이도
내 안의 빛으로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나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세상을 더욱 사랑해 보기로 했다.
내 본연의 모습 그대로.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