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에도 모양이 있을까?
만약 다정함이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가졌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햇살 같을까?
비 오는 날 누군가가 슬며시 내민 우산의 그림자 같을까?
어제 브런치스토리에서 한 편의 글을 읽었다.
손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던 어느 작가님의 따뜻한 기억을 담은 글이었다.
문장마다 정성과 다정함이 묻어났고, 손자의 서툰 글씨까지도 품어주는 글이었다
그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숨을 고르듯 조용히 문장을 따라갔다.
어쩌면 나는 그 기억을 빌려, 내가 겪지 못했던 어떤 따뜻함을 대신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님은 손주들에게 참 다정했다.
글씨를 가르치는 손끝도, 손주들을 담아내는 문장도 모두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 다정함은 누군가의 습관이자 삶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오래도록 쌓인 결처럼 고요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런 글을 마주할 때면, 나는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왜 이렇게 냉정한가. 왜 이렇게 마음이 모나 있는가.
누군가 다가오면 움츠러들고,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네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다정하게 말하려다가도 말소리가 거칠고, 따듯한 인사를 건넬 타이밍도 놓치기 일쑤이다.
내가 가진 마음이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을까 의심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브런치에 응원하는 댓글이 달려도 나의 대답은 늘 상투적이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나는 더 좋은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감사의 따뜻한 마음도 입 밖으로 나올 새도 없이 차갑게 식고 만다.
하지만 어제 그 작가님의 따뜻한 댓글을 보며 마음이 찌르르하게 아팠다.
왜 나는 저런 말투를 쓰지 못했을까?
왜 나는 저렇게 다정한 인사를 할 수 없었을까?
왜 나는 다정함보다 상투적인 표현이 더 익숙한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 한 줄의 문장이 내 안에서 고요히 자리를 잡았다.
마치 오래된 서랍 속에서 꺼낸 오래된 편지처럼, 낯설지만 익숙한 마음.
어쩌면 다정함은 따뜻한 말투나 부드러운 제스처보다
먼저 마음의 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타인을 향한 시선을 바꾸고, 세상을 보는 마음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는 일.
그렇게 하루하루, 나만의 다정함을 연습하는 일.
나는 아직도 서툴고, 어색하고, 때로는 앙칼진 말을 하기도 하다.
그래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더 기다려보고, 조금 더 살펴보고,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하고, 조금 더 귀 기울이기로.
그렇게 매일 나만의 다정함을 천천히 찾아보기로 했다.
세상의 온기를 두 팔로 끌어안은 사람,
겨울날 길 잃은 마음에게 넌지시 담요를 건네는 사람.
그렇게 나도 누군가의 삶에 투명하게 빛나는 작은 따뜻함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