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색으로 말하고, 나는 그 색에 물든다.
남자냐 여자냐, 내향이냐 외향이냐, 계획형이냐 즉흥형이냐.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많지만, 교실 안에서는 매번 그 기준이 부서진다.
축구를 좋아하는 강훈이는 스킬 자수를 잘 놓는다.
“선생님, 이건 드리블선이에요.”
실 한 가닥으로 축구장을 그려내는 손끝을 보면
‘남자애답다’는 말이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나왔는지 깨닫는다.
발표 때마다 다리를 떨고 귀끝이 붉어지는 연우는
마피아 게임만 시작하면 사회자처럼 큰 목소리를 낸다.
“내가 시민이라니까요!”
그 한마디에 교실은 웃음으로 터진다.
MBTI로는 내향형이라던 준호는 쉬는 시간 복도를 제일 시끄럽게 만들고,
항상 계획표를 꼼꼼히 짜는 지우는 소풍 날엔 제일 먼저 계획을 버린다.
나는 매년 새로운 색을 배운다.
올해의 빨강은 성급함이 아니라 열정,
파랑은 말없음이 아니라 깊이,
노랑은 산만함이 아니라 빛,
초록은 눈치가 아니라 배려였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 나는 내 색을 다시 찾는다.
아침마다 커피잔처럼 진했던 내 회색은
아이들의 웃음에 조금씩 번져
민트색이 되고, 연보라가 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얼룩이 된다.
그럴 때면 내가 물감 통 속에 빠진 기분이 든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깔끔하게 구분된 색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묻어가며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그 작은 손끝들 사이에서
나의 색을 또 새로 느낀다.
가끔은 번지고, 가끔은 섞이며.
그렇게 또 하루, 다채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