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수많은 '나(I)' 를 위한 존재론적 헌정시

음악 <I AM(아이엠)>, 아이브(IVE)

by RR

지난해 가장 빠져 있었던 케이팝 곡 중 하나를 꼽아보라 한다면 단연 아이브의 러브 다이브였다. 성애적 사랑이 주류를 이루는 케이팝 홍수 속에서 나르시시즘Narcissism 을 주제로 하여 일레븐에서 러브 다이브로 이어지는 아이브의 컨셉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장르적 신선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외부 세계로부터 구별된 나라는 존재를 자각하면서부터 자아가 형성되고, 그 자아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세계와의 관계 맺기, 세계로의 접속이 이루어진다. 내 앞에 있는 너를, 그 눈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내 마음의 다채로움에 황홀해하던 화자는 눈동자 아래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자신도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과 조우하고, 그렇게 자신에 대한 탐험을 끝낸 후 외부로 눈을 돌린다.


LIKE 뒤의 단계가 무엇인지 아느냐며 타인을 향한 처음 겪는 감정에 어찌할 바 몰라 풋사과처럼 내가 너를 좋아한다 돌진하던 화자는 이제 설명하지 않아도 네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황홀경을 보게 해 줄 테니 나를 믿으라 선언한다. 다 가져야 하는 내 마음속에 네가 들어왔으니 네게 세상을 보여줄게 장담하듯이.



타이틀 곡명 « I AM » 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즉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I AM.")는 세상을 향한 존재론적 선언이며, 나의 존재는 다른 누군가의 입을 빌리지 않은 나의 언어로 설명하겠다("I AM ··· .")는 선포와 같다.


나는(I AM)

누군가가 이루고픈 꿈이며, 과거 어느 아름다운 날과 동경으로 가득 찬 미지의 어떤 세계 속 존재, 혹은 세계 그 자체. 나라는 존재는 존재 자체로 판타지이기에 내가 꿈꾸는 건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내가 주인공일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지만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쓸 거야. 어두운 밤에 길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관습을 부순 나만의 길을 용기 있게 택하면 그게 곧 나의 길이 되지 않겠나. 지금, 여기 현존하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나에게 이까짓 상처가 뭐 대수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그리고 수록곡으로 비추어 봤을 때 서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길에서 너는 나와 함께 가자. 나와 함께 빛나자." 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존재로서의 자아를 세상에 우뚝 서게 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용기로 단단해진 화자가 타자의 손을 잡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나가, 혼자 아닌 함께 빛나고자 하는, 너무나도 벅차고 감동적인 성장 서사, 이 세상 수많은 '나(I)' 를 위한 존재론적 헌정시.


진짜 어떻게 이런 컨셉을 잡고, 이런 가사를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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