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b는 회식이 끝나고 술에 취해 우리 집에 찾아왔다. 짧게 입을 맞추고 b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꽤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왜, 뭔데, 라고 대꾸했지만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b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한테서 구취가 나."
어안이 벙벙해져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나에게 b는 확인 사살을 했다.
"술김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예전에도 가끔씩 난다는 느낌은 받았는데 최근 들어 계속 나는 거 같아.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
그날 밤 쿠팡으로 치약을 주문했다. 입 냄새의 원인을 찾아보다 아침에 남편의 입 냄새로 고민이 많은 주부들이 맘카페에 올린 글을 발견했고 순하얀 치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도 높은 순은 성분이 들어가고 계면활성제와 불소가 들어가지 않은 천연 치약이라고 했다. 과장 광고의 냄새가 물씬 났지만 정말 냄새가 사라졌다는 후기를 보고 결제해 버렸다. 하나에 무려 17000원. 비인간적인 근무환경으로 악명이 높은 쿠팡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3개를 사면 45000원이라고 하여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결제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뭐가 문제지.
간혹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지만 그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다. 양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저 안 깊숙한 곳으로부터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 뽀뽀를 잘 안 했던 건가. b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우울해졌다. 병원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식이관리와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을 때도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하고 무덤덤했는데 구취는... 무서웠다. 말할 때마다 냄새가 난다면... 생각만으로 끔찍했다. 그리고 키스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의심되는 것은 위였다. 작년 건강검진 때 역류성 식도염을 진단받고 용종을 떼어냈었다. 3년 전에도 같은 진단을 받았지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었기에 거의 방치해 두었었다. 나는 건강검진 결과를 찾아 다시 읽었다.
위 내시경 검사 결과 만성 표재성 위염, 위용종이 관찰됩니다. 위 용종은 암과 관련이 낮은 위저선용종(양성 병변)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위염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위점막에 염증이 발생한 것으로 속 쓰림, 소화 불량 등 증상이 있으시면 진료를 받으시고, 특별한 증상이 없으시면 1-2년 후 정기적인 위 내시경 검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만성 위염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간혹 속 쓰림이나 소화 불량이 있고 트림이 자주 나온다고 생각은 했지만 크게 불편함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것이다. b는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어느 병원에 갈지도 헷갈렸다. 한의원에 가야 하나. 내과에 가야 하나. 한의원은 치료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비용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과에 간다면 내시경을 해보자고 할 게 뻔했다. 내시경은 작년에 했고 일 년만 기다리면 국가검진이 있었다. 일단, 병원에 가기보단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아침에 일어나 마시던 커피를 끊었다. 빈속에 쌉쌀한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내벽을 깎아내리는 듯한 그 쓰라리면서도 자기 파괴적인 쾌감을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엽기마라떡볶이를 비롯해 매운 음식을 일체 중단했다. 식이섬유가 많은 채소나 고구마 역시 위에 부담을 준다고 하여 샐러드를 끊고 밥을 해먹었다. 위에 좋다는 감자를 박스로 주문하고 양배추도 한 통 사왔다. 그리고 순하얀 치약으로 이를 닦았다. 그렇게 며칠 나의 상태를 관찰했다. 구취는 식후 2시간 정도 지나 올라왔고 그때 음식물을 넣어주면 잠잠하다 또다시 났고 특히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극심했다. 일주일간 식이조절을 했음에도 구취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구취소녀.
b는 매일 같이 전화해 구취는? 하며, 나보다 구취의 안부를 물었고,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ㄱㅊㅅㄴ라고 초성을 따서 놀렸다. 내가 말할 때면 때 오, 구취소녀, 하며 두 손가락을 콧구멍 안에 넣었고 그럴 때면 나는 b의 목덜미를 잡고 내 목구멍을 보여주며 아아아아아 소리를 냈다.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사오정이 입을 벌려 나방 공격을 하듯 말이다.
일주일 뒤 나는 동네 내과를 찾았다. 이 동네에서 꽤 알아주는, 언제 방문해도 대기가 긴 곳이었다. 의사는 나의 증세를 듣더니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약을 처방해 주며 말했다.
"위산이 많이 분비되는 음식, 신 음식, 특히 아침에 사과 같은 거는 절대 금지고요, 약은 세끼를 꼭 먹고 드세요. 그리고, 웃으세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가 제 기능을 못하거든요."
스트레스는 구취 이후에 생겼는데요, 라고 대꾸하려다 말았다. 이후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식후 3번과 잠들기 직전 공복에 약을 먹었다. 며칠은 그냥 그렇더니 먹은 지 4일 정도 지나자 신기하게 냄새가 사라졌다. 그러나 약을 중단하면 다시 냄새가 나기 시작해 또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번엔 약을 하나 빼보자며 양상을 지켜보자 했다. 그리고 말했다.
"다른 증상은 없는 거죠? 속이 쓰리다거나 신물이 올라온다거나."
"그런 거는 전혀 없어요."
"증상이 없으면 약을 쓰지 않아도 돼요. 본인만 불편하지 않으면. 그런데 불편함을 느끼는 거니까..."
그 말은 더 이상 내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약에 오히려 내성이 생기면 나중에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약을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아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다. 대신 하루 3끼를 꼬박 챙겨 먹기 시작했다. (원래는 2끼만 먹었는데 과식이 위에 좋지 않대서 조금씩 세 번 나누어 먹게 되었다.) 커피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어 식후에 마시고 빈속에는 절대 먹지 않는다. 엽기마라떡볶이가 너무나 먹고 싶은 날이면 유튜브 영상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그 밖에도 식이섬유가 많은 양상추 샐러드 대신 감자 샐러드를 만들어 양배추 라페를 얹어 먹었다.
한 달 정도 지난 지금, 다행히 구취는 멎었고 위를 보호하기 위한 식이습관도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화장실 수납함에는 순하얀 치약이 2개가 남아있다
그리도 b는...
여전히 나를 ㄱㅊㅅ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