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잘 못하지? 그냥 잘한다고 생각하면 돼!
꼬발이라는 말이 있단다. 포켓몬스터 꼬렛도 아니고 귀엽게 무슨 소리냐 했는데, 공을 찰 때 슛을 하는 방식이다. 발가락으로 공을 찰 때 그것을 ‘꼬발슛’이라고 한다. 내가 슛을 할 때마다 영 다른 곳으로 가면, 감독님이 말한다.
아이! 또 꼬발로 찼지! 발등으로 차라니까.
제가 발이 작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라고 농담하고 싶지만 웃을 힘도 없다. 이미 너덜너덜거리는 체력으로 죄송합니다~! 하면서 넘긴다.
감독님께 매번 혼 아닌 혼이 난다. 제발 발목에 힘을 빼고, 슛을 찰 때 온 힘을 다해서 그리고 허벅지에 힘을 실어서 공을 착! 소리가 나게 차라고. 그런데 그렇게 차면 성에 안 차는 걸 어쩌란 말이냐.
공을 더 잘 찰 수 있다는 방법을 제쳐두고, 당장 내 한 슛을 위해 익숙한 방법을 선택한다. 미래의 희미한 가능성보다 현재의 확실한 한 타를 택한다. 대체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하지만.
축구를 배우게 된 지 꽤나 흘렀다. 1월에 시작했으니 벌써 8개월째다. 1시간 반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수업 시간 동안 1시간은 드리블이나 패스를 배우고, 30분은 경기를 한다.
유아 축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유아들은 차면서 배우는 슛을 엄마들은 기존의 몸에 익은 몸짓들을 바꾸면서 배워야한다.
덕분에 체력이 와장창 늘었고, 달리기 실력은 안타깝게도 별로 늘진 않았다.
처음 몇 달은 경기를 할 때 하도 요령 없이 뛰어다니기만 해서 경기가 끝나면 목에서 피 맛이 났는데, 이제는 피 맛은 안나고 그냥 땀구멍이 열려 땀이 비오듯 줄줄 쏟아질 뿐이다. 아직도 요령없이 뛰어다니고, 1시간 동안 배운 기술은 생각도 안나고 그저 공을 향해 달릴 뿐이지만, 그래도 끝나면 느껴지는 그 뿌듯함과 운동이 끝나고 났을 때의 개운함은 따라올 수가 없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팀을 이뤄서 한다. 팀플레이인 축구를 하는 방식에서 결국 또 자신의 성격이 보인다. 다른 팀원들의 축구를 볼 때 항상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사회적 동물이구나.
우리 팀 주장은 정말 잘하고, 거침없고,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친다.
승부욕이 강한 팀원은 정말이지 빵 소리가 나게 슛을 잘하고, 미드필더 역할을 맡아 이리저리 드리블을 한다.
또 승부욕은 약하지만 보호본능이 강한 팀원은 슛은 약해도 공을 잘 뺏기지 않는다.
그 속의 생 초짜인 나는 생각보다는 거침없이 발을 뻗지만 영 닿지 않는다.
간혹 팀원들과 너무 힘들지 않아요? 담소를 나누고, 뛰라면 뛴다. 느려서 탈이긴 한데 그래도 영 성실하게 뛴다.
그게 내 자부심이다.
남편이나 아이는 축구하는데 따라와서 축구하는 내 모습을 3분 남짓 보고 있다가 번쩍 자리를 뜬다. 영 승산 없는 엄마를 응원하기보다 다른 곳에 가서 자기들끼리 축구를 하고 싶어 한다. 참나, 서운하지만 가주는 게 나도 마음은 편하다. 누군가가 보고 있으면 영 부담스러워서 힘이 확 들어간다.
체력이 다하면 나오는 게 근성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 확실하게도 그런 말이 있을 것이다.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보게 된 말인데, 정말 인생의 좌우명으로 쓸 만큼 인용하고 있다. 체력이 간당간당한 몸을 끌고 나는 이제는 닳고 닳아버린 근성을 꺼내든다.
정말이지 이제 내 축구는 근성으로 하고 있다. 그래도 한다.
아이가 이제 자기 축구가 힘든데 그만두면 안되냐는 말을 꺼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 했다가 아이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아직은 그만 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이는 축구가 정말 힘들고 싫은 게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축구가 힘든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실력을 월등하게 이기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힘들어 보였다. 마치 나처럼.
나도 안다. 이토록 어린 아이에게 열등감을 심어주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적인 잣대로 판단하자면 훨씬 나은 사람들이 날고 기는 세상 속에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좌초하고 넘어지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한참을 헤맸다. 나는 주로 피해버리거나 실패해도 웃어버렸고, 그 덕에 잘 다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는 잘 넘어지는 법을,
정확히는 잘 넘어져서 일어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에서라도 배우고자 하는 것은 넘어지는 법을,
그리고 웃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축구 수업을 쉬면 안되냐는 아이에게 나는 힘들어도 가는 모범이 되어야 하므로 정말 날고 기는 단단한 실력자들이 있는 축구장에 금요일마다 간다. 주장은 내가 밀어봤자 밀리지도 않고, 승부욕이 강한 팀원은 패스를 받으라며 롱패스로 구장을 가르고, 보호본능이 강한 팀원은 절대 내 헛발질에 동조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불타는 금요일은 축구를 하러 간다.
물론 아이는 금방 심심해져서 보지도 않고 일어날지언정 엄마가 아무리 우스꽝스럽게 뛰어도, 심지어 공을 차다 헛발질로 넘어지는 일이 있어도
엄마의 넘어지는 법을, 그리고 실패해도 웃지 않는 법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서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주어진 과업만 해내는 게 아니라 때로는 못하는 일도 재밌어서 하는 즐거움을.
혹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오기로라도 해내버리는 힘을 느끼게 하고 싶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다가 어느새 진심이 되는 그 시간들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
서로에게 웃음지을 필요 없고 자신만을 위해 쌓은 시간들이 모이면 나의 자부심이 되고,
그게 내 자신감이 된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아가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꼬발슛을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