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없는 우리 삶에 심심한 응원을.

두려움 너머에 있는 것들

by 예온 YeOn

당신의 최근 실패는 무엇인가? 아니면 최초의 실패는? 나에게는 ‘두발자전거’가 최초의 실패를 안겨준 존재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엄마는 어디선가 중고 자전거 하나를 얻어왔다. 엄마는 어렵게 구한 자전거를 딸이 신나게 타는 모습을 기대했겠지만, 그 딸은 유감스럽게도 운동신경이 제로에 가까웠다. 페달을 계속 밟으며 쓰러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야 한다는 엄마의 일타 강습이 이어졌지만, 나는 단 1m도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엄마는 꽤 속이 상했는지 성마르게 외쳤다. 그냥 내려! 자전거는 남이나 줘버리자! 눈앞에서 자전거를 빼앗겨 의기소침해진 나는 멀어지는 엄마의 뒷모습을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그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실패의 씁쓸한 뒷맛이었다.

나는 칭찬에 익숙한 아이였다.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한글을 읽고 썼던, 늘 백 점짜리 시험지를 가져와 부모님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던 모범생이 자전거 앞에서 명예가 실추될 줄이야. 두발자전거 타기에 실패한 그날, 나는 결심했다. 자신 없는 일에는 섣불리 도전하지 말자. 내 삶에 가능한 실패의 흔적을 남기지 말자.


장류진의 소설 <연수>에는 원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 내는, 성공의 경험이 풍부한 ‘주연’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 주연이 유일하게 실패한 경험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운전’이었다. 그녀는 몇 번의 낙방 끝에 간신히 면허를 따긴 했지만, 도로 주행 중 가벼운 접촉 사고를 경험한 이후로 운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러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운전 연수를 도와줄 강사를 물색한다.


내가 다시 자전거에 오른 건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우울한 어느 날이었다. 베란다 구석에서 엄마가 한참 타다가 손 놓은 낡은 자전거를 발견하는 순간, 내 인생 최초의 실패가 떠올랐다. 어쩌면 자전거 하나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오기가 생겼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몇 시간 동안 혼자 자전거 연습을 했다. 뒤에서 잡아주는 이는 없었지만, 마치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를 마주한 심정으로 비틀거리며 페달을 밟았다. 금방 실력이 늘지 않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최초의 실패를 극복하는 것이, 그 작은 성취가 내게 인생의 주도권을 찾아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으므로.

넘어질까 봐 온몸에 긴장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넘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으니 오히려 안정적으로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제법 먼 곳까지 자전거를 끌고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묘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인생이 내 손안에 담기는 기분이었달까?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건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다른 사람에게 들켰다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뭐든지 잘 해내고 싶은 욕심, 실패를 피하고 싶은 긴장이 두발자전거 타기를 두렵게 만들었다.


주연이 운전하기를 피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남부럽지 않은 성취들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이루어 낸 만큼 어떤 실수도 남기지 않으려는 주연에게 ‘운전’은 다른 이에게 들키기 싫은 치부였을 것이다. 그녀는 우여곡절 가득한 운전 연수를 통해 차츰 자신감을 찾아간다. 언제라도 위기의 순간에 대신 브레이크를 밟아 줄 연수 강사가 조수석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연은 적대적이기만 했던 도로 위 자동차들이 한결 친절하게 느껴지고, 울퉁불퉁 오솔길도 아름다운 꽃길로 보이는 변화를 체험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두려움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주연은 자신을 옭아매던 부담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운전을 진정으로 즐기게 된 것이다. 마침내 오롯이 ‘나 홀로 주행’에 나선 그녀에게 힘껏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 박수는 과거의 나처럼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했다.


삶이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의 총체라고 생각하면 그 책임이 무겁게 느껴진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으니까. 살아가는 건 그렇게 외롭고 고단한 일이지만, 잘 가고 있다고 외쳐 주는 존재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두발자전거처럼 불안하게 휘청이는 삶이 잘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바퀴처럼 느껴진다. 소설 <연수>가 내게 그러했듯이, 그동안 책에 기댄 시간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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