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호수 앞에 서기
나는 늘 가난한 사람이었다. 경제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빈곤한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무엇을 먼저 채워야 나의 삶이 더 행복해질지 늘 알쏭달쏭했다. 돈이 많으면 삶의 만족도가 더 높아질까? 내면적인 성숙에 이르면 삶이 더 풍요로워질까? 그러다가 나의 모든 가난이 결국 남과 비교하는 나의 마음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마음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지우고, 사회가 규정한 성공의 잣대를 지우고, 본질을 흐리는 감정들을 지웠다. 마치 고요한 호수 앞에 가만히 서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월든>은 미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 근처 ‘월든’이라는 이름의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한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삶의 본질 안으로 들어가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문명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 하기를 선택했다. 호숫가 옆에서는 굳이 돈이 많아야 할 필요도 없었고, 옷을 잘 차려입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과 품이 들지 않아서 시간만큼은 많이 남아돌았다. 그는 그 시간을 사색하고 자연을 관찰하고 삶의 소소한 순간들을 느끼는 데 할애했다. 저자는 관념이 아닌 살아있는 경험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는 호숫가 오두막 생활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기준에 얽매여 있으며, 그 기준에 벗어난 삶을 얼마나 위태롭게 바라보는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타인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다는 태도를 일종의 ‘정신승리’로 치부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이 인정하는 삶의 모습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남 걱정’을 하는 것일까? 내 삶을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법은 늘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명확한 공식이란 것이 없다. 저마다 다른 풀이 과정이 있을 뿐이다. 늘 해답지를 훔쳐보고 싶은 아둔한 학생의 심정으로 살아왔는데, ‘월든’을 읽고 나니 이제부터라도 나만의 정답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러자 새로운 의문들이 몰려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 걸까?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는 또 다른 ‘월든’이 나의 복잡한 마음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일으켰다.
<도시인의 월든>(박혜윤 저, 다산초당, 2022)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통해, 저자가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삶의 비밀들을 담아낸 에세이다. 저자는 미국 북서부 작은 마을에서 가족들(남편과 두 아이)과 함께 원하는 만큼만 일을 하면서 여백이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살림은 소박하고, 생활은 단순하고,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본연의 내가 되는 법을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말한다. 누구나 각자의 길이 있고 굳이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도 그 길 위에서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오롯이 나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를 설명할 어떠한 장치도 없다는 뜻이려나. 사회적 지위도, 특정한 경쟁력도 없는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 질문들이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책을 덮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희한하게 안개처럼 뿌연 속이 조금은 투명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결심했다. ‘그래, 이대로 계속 가보자. 불안하고 부족하고 어정쩡한 대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삶에 소홀한 것이 아니고, 부단히 애를 쓴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니까. ‘이번 생에서 바지런히 나만의 행복을 찾아보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