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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남긴 향기

꽃 진 자리마다

by 에세이 천사


물빛 하늘 올려다보다

핑글 눈물 고이는 그런 날.

마음 다독이는 만큼 흥건한 기억들

아무 일도 없었다면서.

무슨 일 있었니?

묻는 사람 하나 없다면서 흘러내리는

눈물방울

속으로 피어나는 꽃빛만 서럽다.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는 햇살은

금실, 은실로 나부낀다. 이렇게

따스한 세상이라면서.


가을이 고인 물길 속에서 굴절된

은행나무가 아직은 생살 같은

나뭇잎 하나씩 하나씩 던지고 있다.

살아온 하루들 지워버리듯.

바람 속으로 걸어가는 야윈 어깨들.

바스락 부대끼면서

가버린 인연이 되어버린 발자국 더듬는다.


사는 것이 떠나는 것이다.

오늘과 나누던 다정한 눈빛과 웃음도

아무렇지 않은 몸짓으로 안녕이 된다.

그렇게 너와 내가 사는 것은

손 흔들면서 자꾸 뒤 돌아보는 것이다.

이미 잃어버린 그림자를

발밑에 끌고 다니는 것이다.


어느 날엔가. 좀 쉬어가야지 하는 순간

목이 마르다. 사느라 갈증을 참았던 것처럼.

비로소 알게 된다. 삶이라는 정원에

피고 지는 꽃빛이 상처로 인해

진해지고 있는 이유를. 바람맞고 된 서리

내린 자리마다 솟구치는 노란 멍울

속에 담긴 눈물 한 입 베어 물면

온몸으로 스미는 향기는 눈물이다.


사는 것이 다 그런 거지 뭐.

사랑 한 줌 붙잡은 손바닥으로

바람의 벽을 기어오르던 담쟁이넝쿨 같은 거지.

고개 숙이면 빈 손 위에 그어진

손금이 물길로 흐른다.

사느라 잊고 사는 너와 나의 정원에는

송글 송글 맺히던 여름날 땀방울이

귤빛으로 익어가고 있다.

너와 내가 함께 나누던 이야기

생의 저녁 섶에서 뎅그렁! 뎅그렁!

종소리로 번지는 동안.

나는 너로 인해, 너는 나로 인해 무심해지던

상처는 촛불로 타 들어간다.

뜨겁게 사는 것도 아니건만. 함께 사는 것이

서로를 태우는 일인 모양이다.


꽃진 자리마다 피어나는

저 불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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