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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료실일상 Mar 21. 2023

진료실 일기(1) : 엄마가 되긴 어려워

똑똑. 진료실 문이 무겁게 울린다.
'안녕하세요'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들어온다.
30대 후반의 여성과 기품 있어 보이는 60대 여성이 함께 진료실로 들어온다.
두 사람 모두 조금의 세균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마스크로 코와 입을 정확히 고정하며 진료실로 들어왔다.

나 : '오늘 어디가 불편해서 오시게 되셨나요?'

딸 : '임신하고부터 속이 너무 쓰려요'

진료를 보러 온 환자는 30대 후반의 여성. 그녀는 4번의 시험관 시술로 이제 막 아이를 가진 9주 차 임산부였고, 60대로 보이는 여성그녀의 어머니였다.
너무나 힘들게 아이를 가졌지만,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속 쓰림과 속이 타는 듯한 느낌이 발생하였고, 산부인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었지만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 나에게 진료 의뢰가 되었다.

딸: '약을 먹고 싶지 않은데 너무 속이 쓰려서 왔어요... 혹시 약 먹지 않고 조절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엄마: '우리 딸이 어렵게 임신했어요. 미국에서 사는데 애 가지려고 한국 왔단 말이죠. 시험관으로 힘들게 애는 가졌는데 그 뒤로 위산역류가 너무 심한가 속이 엄청 쓰리데요... 아기 가지고 엄청 조심하는데도....'

딸: '아 엄마. 뭐 그런 이야기까지.....'

엄마의 계속되는 스토리텔링에 딸은 부끄러운 듯 엄마의 말을 막는다. 엄마는 해법을 요구하는 눈빛을 나에게 보낸다.
환자의 말을 들어보았을 땐 역류성식도염이 가장 의심되었다. 임신을 하게 되면 Progesterone 분비가 증가하며 위와 식도의 연결 부위에서 위산이 역류하지 못하도록 막는 괄약근 (lower esophageal spincter, LES) 약해지며 역류성식도염이 발생하게 된다.

나: '약을 먹고 싶지 않으시면 우선은 생활습관 조절을 해볼 수 있어요. 커피나 신맛이 나는 음식 피하기, 밤늦게 먹지 않기, 음식을 먹고 3-4시간 뒤에 눕기부터 실천해 보죠'

딸: '전부 다 해보고 있어요...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역류성식도염에서 피해야 할 음식이나 생활 습관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속 쓰림은 좋아지질 않아요....'

나: '그러면 약을 드실 수 밖엔 없는데....'

딸: '약을 안 먹을 순 없나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아기한테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너무 걱정돼요'

참 어려운 순간이다. 역류성식도염에서 생활습관으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을 때에는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게 순서인데, 약물치료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시니... 이럴 때는 우선 환자에게 약에 대한 안정성을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나: '모든 약이 다 아기에게 해로운 것은 아니에요. 약들 중에서 부작용 없이 안전하다고 알려진 약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증상이 너무 심하시니 그냥 버티지 마시고 우선 약을 좀 써보도록 하죠'

딸: '말씀하신 약들은 Category A (카테고리 A) 약들인가요?'

Category A. 미국 FDA에서 임산부에게 사용가능한 약들을 Category로 분류한 것이 있다. Category A의 약은 인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태아에게 위험성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Category B의 약물은 동물실험에서는 위험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직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임산부를 대상으로 하는 약물 실험은 윤리위원회 통과가 매우 까다로우며, 실험군을 모집하기도 어려워, 일반적으로 Category B 이상의 약물이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약을 사용하게 된다.

나: 'Category B의 약물입니다. Category A의 약물을 손에 꼽게 적습니다... B 도 충분히 안전한 약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걱정 말고 한번 드셔보세요'

딸: '아... 그렇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그래도 막상 약을 먹으려니 너무 찜찜해서요....'

환자도 알고 있었다. Category B의 약물도 비교적 안전하다는 사실을. 그러나 '비교적' 이라는 단어는 산모에게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100% 가 아니라면. 0.000001% 라도 배속의 아이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기에 끝까지 약물치료를 피해보려 한 것이었다.

수차례의 설명과 설득 끝에 결국 환자는 약물 치료를 해보기로 하고 진료실을 떠났다. 약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아니면 뱃속의 아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진료실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딸과 엄마의 얼굴의 이마에는 주름이 지어져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특히나 뱃속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다. 아이가 뱃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 순간부터 엄마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먹어야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무엇이 아이에게 해로운지. 엄마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니까. 심지어 엄마가 아픈 순간에도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약을 먹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된다는 건 참 위대하다. 이 모든 희생을 감당하며 나와는 다른 새로운 생명을 나의 몸 안에서 자라게 하는 과정이니까. 나를 희생하며 나를 닮은 아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오늘 진료 보러 온 환자와 아이 모두 출산까지 건강하게 지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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