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않는다. 거절하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통해서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 한 새로운 일들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나는 새로운 일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MBTI는 ISFP. ISFP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면 ' 안정지향적이며 익숙한 것으로 좋아한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라고 나와있다. 이런 설명에 딱 들어맞게 내는 새로운 환경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새로운 일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새로운 것들과 마주할 때 내가 가진 시선이 넓어지고, 나의 좁아진 생각이 변화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 익숙한 것은 편하긴 하지만 나를 바꾸진 못한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통해서라도 새로운 일들을 해보려는 것이다.
최근에는 라디오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누군가는 '라디오에 출연하는 게 뭐 그리 큰 일이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평소 반복되는 일에 익숙한 나에게 라디오 출연이란 엄청난 이벤트였다. 나 스스로는 절대 생각도 해보지도 않은 일이었을 텐데, 부탁받은 일이기에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인 데다, 써간 대본을 읽는 게 전부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라디오가 끝난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출연 부탁에 응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라디오 출연 덕분에 방송국 스튜디오에도 처음 방문해 보고, 대본을 쓰기 위해 공부하면서 그동안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던 의학적인 지식도 정리할 수 있었다.
브런치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주변에서 해보라는 권유가 없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짜내서 글을 쓴다는 게 나에게 마냥 재밌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을 쓰면서 나조차도 몰랐던 나의 생각들을 알게 되고, 뒤죽박죽이던 내 머릿속을 정리하며 내 삶을 기록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도 나는 남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않을 것 같다. 부탁받는 일이 피곤하고 귀찮을 때도 있겠지만 너무 얼토당토 하지 않은 부탁이 아니라면 우선은 해보겠다고 말할 것 같다. 남들의 부탁은 겨울철 전기장판이 켜진 따뜻한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깨우는 알람소리 같은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