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외로워지는 날엔
외로움이 찾아드는 날이면 나는 잠수를 탄다.
세상과의 연결을 잠시 끊는 것이다.
SNS 끊고, 휴대폰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아무곳에나 내버려 둔다.
혼자만의 시간을 더 더더 가진다.
내 속의 세상으로 깊이 파고든다.
내 속의 세상이라는 것이 뭐가 있을까.
몸으로 느끼는 요가.
일상을 기록하는 것.
오늘 하루에 집중하는 것.
이번에 다가온 외로움도 색이 짙었다.
이 마음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도서관에서 홀린 듯이 심리 서적을 손에 닿는 대로 꺼내기 시작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게 정답을 줄 것만 같은 유튜브 속 연사들의 말을 귀동냥했다.
그래도 마음이 잠잠해지지 않던 날.
'놀심'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듣다가 한 마디 말로 들끓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애쓰지 마세요.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애를 쓰세요.
내가 힘들어하던 일들의 많은 지점이 이 말과 맞닿아 있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일.
성실히 노력하면 인정받을 것만 같지만 지금 당장 정직원이 될 수 없다는 것.
내가 잘 못해서 떠나간 인연이라는 생각에 자책을 하더라도 되돌리기 어려운 인간관계.
내가 더 잘하면 아이들이 마냥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아이들의 욕구를 다 채워 줄 수도 없다는 걸.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결과는 내가 바라는 바대로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희한하게 어깨가 가벼워졌다.
뜻대로 안되니깐 막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은 그저 받아들이자는걸.
조금은 더 힘을 빼자는 것.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일상에 최선을 다하길.
나만의 세계를 모래성을 쌓듯이 아주 조금씩 만들어 가길.
결국 그게 다 바스러질지언정 그 흔적은 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흔적을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음을.
너무 잘해보려 애쓰지 않아도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자욱들이 내 속에 녹여져 있었음을 언젠간 알게 될 것이라는 것도.
유튜브 '놀심'채널에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통제가 가능한 일에 집중하라 권했다.
그게 뭐가 있을까?
어차피 몇 개월 뒤면 끝이 난다는 직장이란 생각보다 오늘 주어진 일에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일.
지나간 인연은 잡을 수 없지만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길.
더 멀리서도 찾을 것 없이 내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 이 길.
마당이 있는 집만 떠올리기보다 거실에 푸르른 수국이라도 하나 더 가져다 놓길.
얼굴과 몸매만을 탓하기보다 옷의 소재와 색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나만의 스타일을 조금씩은 알게 될 것임을.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 원하는 걸 손아귀에 넣을 수는 없더라도 한 뼘 정도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차이는 아주 작은 변화를 삶 속에 꾸려 넣는 것에 있더라.
그걸 알아차리고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날씨에 텁텁한 소파를 탓하기 보다 시원한 소재가 맘에 드는 소파 패드를 하나 장만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며 새벽에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다 가뿐한 몸과 마음을 위해 잠을 조금 더 청해보기도 했다.
피곤해서 미칠 것 같은 날에 낮잠도 반찬처럼 곁들였다.
틀에서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일상에서 농땡이도 부리고, 젊은 친구들의 장단에 맞춰 나도 같이 "개꿀"이라는 말을 해봤더니 웃음이 피식피식 나던 건 왜일까.
반듯해야만 할 것 같은 네모난 상자 속에서 조금은 벗어났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간다.
실수를 절대 하지 말아야지라는 말보다 이걸로 하나 배웠네 하고 손을 탈탈 턴다.
실수로 인해 주눅이 든 날에는 "지나간 일은 고마 이자 뿌이소."라고 말하는 동료의 말에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다.
그렇게 내가 가질 수 없는 결과에 대해 하나씩 힘의 값을 빼기 시작했더니
까꿍하던 외로움이 저만치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안색이 밝아졌다.
마음이 조금은 더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거울 속 내 낯빛을 보고 알아차렸다.
By. ㄱㅆㄴ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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