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 Jul 12. 2024

성격에 화장을 덧칠하는 일은 그만하는 걸로

2% 부족한 네가 좋아


애쓰며 살았던 어제보다 요즘의 나는 편안한다.

나의 백치미를 여실히 드러내며 살아가는데도 편안하고 자연스럽단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내 성격대로 살아가도 크게 나무랄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성격 고치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자주 곁에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라며 사람을 만나라 권하고,

예민함을 내려놓고, 좀 넘어가라고 다그치는 이도 있었다.

그런 이들과는 자의 혹은 타의로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예민성의 극치, 쫄보인 모습, 눈치 보는 모습들을 자주 드러낸다. 

그런 모습들을 없애버리려 애쓰며 살았는데. 

그렇게 돼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민함을 버리고, 모두에게 당당해지려 애쓰고, 소심한 성격을 고치려 무수히 노력했는데.

어쩜 어떤 면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바랐다는 걸 요즘 들어 깨닫는다. 












착하게 행동하며 사랑받고 인정을 얻으려 애쓰고 살았던 지난날. 

반전은 그 착함에 꾸며진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주 나를 손해 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고, 배려하는 모습이 당연하다 바라보았다.


그런 나는 알고 보면 꽤 계산적이었고, 퍽이나 개인주의자였다. 

이런 모습들을 숨기고 살았다. 이기적인 모습이라 생각했다.

이 면들을 들키면 사랑 주는 이들에게 버려질까 본모습을 꾹꾹 눌러 숨기고 살아왔다. 




그런데 어쩌나. 

지긋지긋했다.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다. 

나도 좋은 것을 먼저 차지해 보고도 싶었다. 

손해 보는 일을 자처하는 일이  진저리 났다. 

착하면 사랑받으리라. 그런 노력도 무색하게 꾸며진 모습으로 자주 살아가다 보니 인간관계에 있어 단절이  생겼다. 

그들은 나를 변했다고 여겼지만 나는 성격에 진한 화장을 덧칠하는 일에 언젠가 질려 버리고 말았다. 

그 끝은 관계가 와장창 부서지는 거였다.




내게 본래의 기질대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힘든 것이었다. 

차라리 성격을 꾸미는 게 더 쉬웠다. 

사랑받는 내 모습에서 그 고리를 싹둑 끊어내는 것은 속으로 피눈물이 날 정도로 아픈 것이었다. 


내 멋대로 살겠다고 다짐을 하고서부턴 주변에 사람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내 주장을 하는 모습들이 낯설게 느껴졌을게다. 

할 말을 내뱉는 일은 내게 참 서툴러서 날 선 말로 사람들에게 대구 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싸움 닭이 다 됐다는 생각도 들더라.

이렇게 살다가는 내 주변엔 사람이 아무도 없겠다는 생각까지 맴돌더라. 

그만큼 사람들은 썰물처럼 밀려나갔다.



그럼 차라리 혼자가 되어볼까. 

외로움을 자처했다. 

혼자 도서관에 처박혀 책을 읽고 카페에서 글을 쓰고 필사를 했다. 

주변에 하하 호호 웃는 소리에 마음이 이따금 흔들리곤 했지만 이어폰을 귀에 쑤셔 박아 소리로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내가 초라히 여겨질수록 더 예쁘게 차려입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더 멋진 공간에 나를 초대했다. 

나란 사람은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타인의 시선에만 향하던 관심을 나에게 돌렸다. 나만의 굴속에 들어가 나의 감정, 가치, 철학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았다.


그렇다고 뾰족한 변수는 없었으나 한 가지 변한 것은 내 못생김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나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을 긍정하고, 못난 나라고 탓하던 일을  때려치웠다.

사람을 만만하게 보는 전제를 까는 그 사람이 더 못난거라고. 

만만한 사람을 구르는 돌처럼 고르던 그가 이상한 거라고. 


내가 나를 죽이고 있었다고. 

나 만큼은 나를 돌봐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 나도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도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작은 일도 잘 넘어가지 못하는 나의 속 좁음을 조금만 탓하기로 했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속에 꾹 넣어놓고 자꾸만 곱씹는 사람이라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피곤한 사람이겠지만 그가 정의한 내 모습이 다는 아니라고. 

나는 다른 면도 가지고 있다고. 


대신 나처럼 작은 일에도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을 나는 너무나 이해할 수 있다고.

당신도 결코 이상한 게 아니라고. 예민한 게 죄는 아니라고. 

예민하기에 사소한 일들로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다고. 더 많이 울지만 더 많이 웃을 수 있다고. 

더 호되게 상처받지만 더 후하게 감동받는다고. 

그런 내 모습을 반길 이도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라고. 







지인들과의 관계를 둥글둥글하게 잘 이끌어가던 언니는 저녁 줌바 댄스 반에 잘 섞이지 못하는 게  속상하다 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끼워주지 않아도 취미를 배우러 잘 다녔는데. 원래 처음부터 잘 섞이지 못하니까. 그건 내게 기본값이어서 그런 일로 나는 덜 아파했다. 


나는 그가 오랜 지인들과 둥글둥글하게 잘 지내는 모습이 터질 듯 부러웠는데. 


내가 퍽이나 외로운 날, 친구와 함께 있는 그 언니와 통화를 할 때 몹시도 부러웠는데. 그런 언니도 힘든 사이가 있다는 걸 내게 토로했을 때 나는 언니가 순간 얄궂게 더 좋아졌다. 

언니도 어려운 구석이 있구나. 예민한 내가 문제라 생각했는데 그때만큼은 언니의 상황이 절절히 이해되어 내가 더 애정을 가지고 토닥여 주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언니의 빈틈이 살갑게 다가왔다. 

언니가 그런 부분을 숨기지 않고 내게 달콤하게 꺼내주어 너무 감사했다. 

부족한 면을 숨기지 않고 내게 고백해 주어 뛸듯이 고마웠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누군가도 이런 나의 빈틈을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나의 부족한 면 때문에 나에게 매력을 느낄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가만 보면 나도  완벽한 자태보다 느지막이 자신의 흠을 고백해올 때 더 인간미를 느끼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내가 꼭 완벽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더 착해지고, 더 나아지고, 더 완벽해지려 애쓸 필요가 있을까. 

그 언니도 나의 허술한 점도 좋아하지 않을까. 이런 맹한 나라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찾아온다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써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아니 완벽할 수도 없다. 

아니 정해놓은 정답 같은 완벽이란 있는 걸까? 



그래서  너무 애타게 잘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바라고 기대하는 내가 되기 보다 내가 가진 모습도  받아들여보자고.

나의 태도는 노오력해서 바꿀 수 있지만 타고난 예민성, 내향성, 개인주의적인 기질, 계산적이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공정을 바라는 나의 가치마저는 버릴 수는 없다. 


분명 이런 나의 모습에  이끌리는 누군가도 있을 거라 믿는다.

부족해서 타박하고만 싶은 내 못난 부분이

2% 부족한 내가 좋아 마음을 전하는 이도 있을 테니.



더는 애타게 잘하지 않기로 했다. 


성격에 화장을 덧칠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 yunona_uritsky, 출처 Unsplash





by. ㄱㅆㄴ 정수






작가의 이전글 마음이 조금은 더 건강해지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