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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Aug 25. 2024

곱씹기

후회되는 일들 속에서.


내가 잘 했던 행동이 있다. 

곱씹기.

'그 애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나는 또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내가 만약 다르게 행동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우리가 여전히 친했다면. 내가 서운하다 말했다면. 내가 이해했다면.'등등등.


이런 곱씹는 행동을 끊임없이 해왔다. 나도 모르게.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곱씹는 행동을 반추라고 말했다. 반추를 자꾸만 반복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이유를 몰랐다. 

여느 책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게 나와 있었다. 




후회가 되니깐. 다시 돌이키고 싶은 마음에




그날을 후회했기에. 오늘과 다른 결과를 불러오고 싶기에 나는 머릿속에서 자꾸만 새로운 시나리오를 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 

나는 '그랬다면 어쨌을까?'라며 후회를 곱씹지만 이미 내 손에서 떠나버린 일이었다.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마음이 건강해지려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일'은 놓아보내고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해 볼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말하더라. 


내가 곱씹는 건 앞의 것이었다. 할 수 있다고 반추하지만 내가 되돌릴 수 없는 일. 가령 동생과 싸웠다거나 친구와 멀어진 일 등. 직장에서 잘리는 것. 

자꾸 반추하는데 달라지는 건 없더라. 내 마음 한편만 아릴 뿐.












"설거지할 때, 뽀독뽀독 잘 씻겼는지. 밥알이 묻어 있는지 아닌지. 그릇이 둥근지 네모난지 촉감을 느끼며 설거지를 할 때가 있어. 

그러면서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곤 해. 얼마 안 걸리는 시간인데 명상 같다고나 할까."


설거지의 지루함을 잊으려 영상을 보고 노래를 듣던 나였는데. 

언니가 말한 그 시간이 '지금, 여기를'사는 그 방법이었다. 


당장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개수대의 물을 틀었다. 포개진 그릇들을 애벌로 씻고 거품을 내어 하나씩 닦기 시작했다. 거품의 흔적이 사라져 말개진 그릇들을 겹치지 않게 하나씩 포개어 두었다. 그 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올해 설거지를 한 날 중에 가장 개운 한 날 이었다.



애들이 없는 주말 오전. 

외로움이 나를 덮치려고할 때 헬스장으로 발을 돌렸다. 


이른 시간부터 모두들 나들이를 떠났는지 사람이 거의 없는 헬스장에서 나는 걷기 시작했다. 윗몸일으키기도 하고 웨이트 운동도 했다. 무거운 중량을 발로 손으로 번쩍 밀어올릴 때마다 마음이 단순해졌다. 근육이 순간순간 도드라진다는 느낌을 만끽하며 이 순간에 머물렀다. 복잡한 감정들이 흐려졌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감사했다. 헬스장에 가기 전 어두웠던 나는 얼굴빛이 해사해져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아침을 시작했다. 












영원히 어제의 일을 곱씹지 않기란 영원히 불가능할 듯하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기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에 마음에는 불안과 후회가 뒤따른다.


그러나 엎어진 물. 주워 담는 것도 내 몫이 아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결과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해 나가며.

설거지가 됐든 집안 정리가 되었든 책을 읽든. 

오롯이 그 시간에 머무는 것이다. 



그렇게 곱씹는 행동들을 잠시나마 멈추고

이 세상과 접속한다. 

그렇게 어제보다 오늘을 더 만끽하는 내가 되다 보면 어제의 미련은 더 내려놓겠지.



그런 마음으로 오늘을 만들기를. 

오늘은 덜 곱씹기를.

오늘 하루만큼은 더 만져보고 느끼고  이 세상을 더욱 품에 안기를. 









© mxcapture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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