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 Nov 17. 2024

주말, 낮술인데 혼술까지


결혼하고 반찬 만드는 것도 늘었지만 실력이 가장 늘어난 게 하나 있다. 

바로 주량.

소주 반병이 뭐람. 몇 잔만 먹어도 쾍 하고 꼬꾸라지던 나였는데. 술 잘 마시는 형님들을 만나

한 해 두해 쌓아가다 보니 주량은 점점 늘어만 갔다. 


오랜만에 만난 형님에게 

"오올 동서 술 좀 늘었는데"라는 칭찬까지 들을 만큼 부쩍 늘어만 갔다.(그래봤자 소주 한 병이 다다)


시댁이 시골인지라 작은 밭에서 부지런히 농사일을 하시는 시어머님의 일을 돕곤 한다.

마늘을 뽑고 말려놓은 걸 가위로 자르고 정리한 뒤 그 버글버글한 먼지 속에서  들이키는 막걸리 맛이 그렇게 기가 막힌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농사일을 일 년에 한두 번 도울까 말까 하지만 그래도 일정이 혹여나 잡히면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새참과 막걸리 생각이 구수하게 나더라. 


형님들과는 계곡에서 만날 때도 당연히 앉은 자리에서 맥주캔을 따는 것으로부터 인사를 시작했고, 무제한으로 맥주를 준다는 곳을 패키지여행지로 마땅히 선택하는 형님들 속에서 나의 주량도 무럭무럭 늘어만 갔다. 


"수박 긁어가꼬 그 안에 소주 부어 마시믄 진짜 맛있는데."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수박 안에도 소주를 부어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아 술은 여러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 거구나. 









엄마는 삶이 고단할 때 한잔 두 잔 술을 마셨다. 

물컵에 소주를 따라 놓고는 혼자 홀짝이는 모습을 어린 내가 간간이 봤지만 그게 삶의 무게인 줄 난들 몰랐다. 

그렇게 만난 술은 참 쓴맛이라고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나도 그랬다. 울고 싶을 때 도망치고 싶을 때 그런 날 술을 마시며 마음을 달랬다. 그러니 내게도 술은 꽤나 쓴맛이었다. 

술이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안주나 맛있었지. 술이 뭐가 맛있냐고. 삶을 잊고 싶을 때나 마시는 게 아니냐고.


그런 내게 형님들은 즐겁게 술 마시는 방법을 알려줬다. 

술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끝없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님이 차려주신 정성스러운 음식과 가족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마시는 술맛은 참 그윽했다. 


"형님, 어제 자려고 누웠는데 천장이 빙빙 돌더라고요."


이런 술 취한 느낌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나는 대부분의 시간 말짱했다. 10년 동안 형님들과 술을 마셨지만 별로인 날은 없었다.


술이란 편안한 사람들과 좋은 안주를 곁들이며 시간을 보내는 일 중의 하나라는 것. 

땀 흘려 일한 뒤 수고한 나를 위해 들이키는 한 잔. 삶의 소소한 재미라는 것. 그걸 내가 알게 된 것이다. 










오일 동안 일하고 금요일 저녁에 마시는 맥주 맛은 끝내줬다. 


동료가 차가운 유리잔에 병맥을 부어 마시면  맛이 끝내준다 해서 그걸 따라 해봤더니 오마이갓. 최고의 맛이었다. 그렇게 일의 시름을 맥주 한 잔으로 달래며 주말의 기쁨을 자잔 하게 축하했다. 


일을 그만둔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늘어난 지금, 황금 같던 주말은 또 시간을 때워야 하는 하루가 되었다. 

자꾸만 쉬어야 하니깐 또 쉬어야 되는 주말은 그렇게 달갑지 않더라. 그러던 순간 맥주가 생각났다. 낮술 콜?



애들도 이제 나와 노는 게 재미가 없는지 자꾸만 밖으로 나간다. 

빈 둥지처럼 허전한 마음에 만화책도 빌려보고 그러고 또 뭐 할까. 이 길고 긴 시간에.

그렇게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냉장고에서 도수가 낮은 카스 라이트를 하나 집어 들었다. 보통 맥주의 도수는 6~8도라는데 라이트는 도수도 4도. 

한번 마셔보니 딱 취할듯한데 바로 깨버렸다. 아쉽긴 하지만 보내야 할 시간이 남아있는 낮에 먹기 딱 좋은. 


안주는 과자를 고르려다 좋은 걸 먹고 싶더라. 

냉장고에 쟁여 있는 감을 하나 깎아서 접시에 소담히 담았다. 김치냉장고에 둬서 차가워진 캔 맥주를 따서 한 모금 들이켜고 달큼하게 익은 아삭한 감을 한입 베어 무니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더라. 은은한 조명 사이로 티비를 보며 마시는 맥주는 평안함 그 자체였다. 얼큰하게 취하기 보다 기분만 내어도 좋은 그런 일이라고나 할까. 


주말, 그것도 대낮에 혼자 술 마시는 모양새가 좀 빠지긴 하지만, 그래도 알게 뭔가. 내가 좋다는데. 편안하게 늘어진 뒤 아이들을 다시 만나니 그것 또한 반가움이더라. 허전할 사이가 없더라. 괴로워서 마신 게 아니라 내가 원해서 마신 술맛은 참말 좋았으니깐. 



그렇게 시간을 즐기는 법을 배우는 하루를 또 보냈다. 












작가의 이전글 측은지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