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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대한 경의

"말" 제어 어플 출시를 기다리며

by 시월아이

나는 말이 많아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이들을 종종 보았다. 누구나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


1. 눈만 마주치면 입을 먼저 연다. 심지어 할 말이 있어 먼저 찾아온 사람에게도 다짜고짜 본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2. 자주 억울함을 호소한다.

3.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다.

4. 본인도 말이 많으면서 말 많은 사람을 싫어한고 강조해서 말한다.

5. 상대방이 말을 할 때 귀를 기울이지 않고, 본인이 할 말을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금방 까먹는다. (본인이 했던 이야기도 자주 까먹는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하지 않음만 못하다. 말은 그중 가장 들기 좋은 예다.


날이 선 말도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너무 많은 말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보통 '기가 빨린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말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영혼이 날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반복되면 눈이 흐리멍덩해지고 근육통도 유발되면서 그 자리를 지키기 힘든 상황까지 간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나이가 듦에 따라 말의 빈도수가 많아지고 그 무게가 점차 가벼워지는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 내게도 찾아오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나는 가끔 엄마와 대화를 할 때 숨이 막힌다. 한 가지 주제를 꺼내 들면 화제를 돌리려면 엄마 말을 중간에 끊지 않을 수 없다. 내 이야기를 하려 했으나 결국 엄마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리고 다시 엄마 친구의 이야기에서 다시 엄마 친구 딸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 고갯길에서 나는 그만 숨이 넘어가고 만다. 딸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려고 하니 자꾸 새로운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이다.


2022년 MBC경남에서 제작한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가 그 해 백상예술대상 TV부분에서 수상 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고, 2024년 12.3 내란으로 탄핵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의 주역이었던 문형배 전 헌법 재판관에 의해 세간에 더욱더 알려지게 된 한약사이자 독지가이시다.


우리 사회가 그를 존경해 마지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평생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이용해 번 돈을 교육, 문화, 언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수천억 대에 달하는 기부를 했다. 특히 100억 원이 남는 돈을 들여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한 후, 8년 뒤 국가에 헌납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가정폭력 여성을 위한 시설 건립, 형평성 운동 지원 및 참여, 지역 언론사 및 각종 문화인 지원 등 셀 수 없는 지원 활동들을 해 왔다.


물론 그가 사회를 위해 기부하거나 학생들에게 준 장학금의 액수도 어마어마하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이만큼의 (누군가는 그를 '신'에 비유하기도 했다.) 존경과 위대함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누적 기부액이 82조 원에 달하는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이나,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빌게이츠의 예상 기부액 150조 원보다, 김장하라는 사람이 더 우리에게 깊은 여운과 울림을 주는 것은 그가 바로 '침묵'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가 오롯이 그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그의 말과 얼굴보다 그에게 장학금을 받으며 어른이 된 김장하 키즈, 마을 주민, 남성당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언론사와 각종 단체의 관련자들이 더 많이 나온다. 그가 입을 열지 않는 이유다.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많은 기관이나 단체, 그리고 학생들 마저도 그에게 돈을 받으러 가면, 김장하 선생은 돈통에서 필요한 만큼의 돈만 내어줄 뿐, 그 어떤 질문도, 충고도, 조언도, 심지어 가벼운 응원의 말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돈에 더 큰 무게감이 느껴졌다는 것.


침묵은 사실 가장 많은 이야기를 던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가장 진실하다. 언어를 이용한 이야기 전달은 언제나 감정이나 사실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혹은 진실에 침묵하고 거짓을 말함으로써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에서 프리렌 일행은 어느 마을에서 마족과 대척하게 된다. 이 마족은 마물 중에서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언어를 이용해 인간을 회유하고, 끝내 인간을 말살하고자 한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마족은 인간이 겨눈 칼 앞에서 '엄마, 무서워.'라는 말로 살아남는다. 그러나 끝내 자신을 거두어준 노인을 죽이고 만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마물이기 때문이다.

프리렌에 의해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프리렌은 사라지는 그녀(마족)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엄마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왜 부르냐고. 마족이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면 못 죽이잖아요. 마치 마법처럼 근사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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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의미를 담는다. 의미가 없는 언어는 없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에는 의미가 있다. 그 정해진 의미로 인해 인간은 서로의 감정과 지식을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전적으로 정해진 의미일지라도, 그 언어가 쓰이는 상황과 듣는 이의 사고의 방향에 따라 클레이처럼 변형된다. 이것이 언어의 불완전성 아닐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할 수 있는 글과 다르게 입으로 내뱉는 언어의 형태, 즉 말은 이러한 언어의 불완전성 때문에 더욱더 위험하다. (누구나 살면서 적어도 열댓 번쯤은 자신의 말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다.)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은 통계학의 가장 기본 개념만 들이대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묵과(默過)하는 것과 침묵(沈默)하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것임은 언급하지 않아도 될 터, 내가 이토록 침묵에 대해 열렬히 찬양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길 바란다. 이 역시 언어에서 오는 불완전성 때문임을...


이 모든 걱정은 나에게로 향한다. 언급했다시피, 내 나이가 점점 50을 향해 가고 있고, 곧이어 노인의 반열에 오르게 될 터이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 말이 많아지진 않겠지만, 자기 자신의 젊은 시절과 비교해 보면 나의 말이 많아졌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쉬이 알 수 있다. 나는 아직 내가 말이 많아졌다고 느낄 수 없지만, 이 또한 나의 착각일 수 있다.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이 말이 많다고 자백하지 않는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


갑자기 떠오른 것인데, 하루에 내가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지, 어제보다 혹은 1년 전보다 얼마나 말수가 늘었는지를 측정해 주는 어플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다른 대화 참가자에 비해 어느 정도 말을 더 했는지 분석해 주고,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말이 많았다면 경고 알람을 주는 기능도 있으면 좋겠다. 만남의 목적에 따라 적정한 수준의 대화 소재나 발언의 양이나 수위에 대해서도 코치해 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내가 글을 쓰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글로 풀어내기 위함이다. 글을 좀 쓰고 나면 입은 조용해진다. 나는 도저히 앞으로 더욱더 활발해질 나의 입을 단속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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