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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완성된 아이(1)

챕터1. 퇴학

by 리들

챕터1. 퇴학


러시아 북부, 설원의 한복판에 자리한 사립학교.

대리석 복도마다 가문의 문장이 걸려 있었고, 매달리는 샹들리에는 부모들이 낸 학비의 무게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하얀 빛이 창문 틈으로 들어와 교실 안 책상 위에 반듯하게 내려앉았다. 아이들은 일제히 펜을 움직였다.

종이를 긋는 소리가 교실 전체를 하나의 리듬처럼 묶어주었다.
…아니, 사실 두 개의 리듬이 있었다.

알렉산드라 리들이 그 두 번째 리듬이었다.
연필은 손끝에서 굴러다니며 종이를 한 번도 누르지 않았다.
총명하지만, 어딘가 오만한 녹색 눈동자는 칠판도, 교과서도 아닌 창밖에 걸려 있었다. 쌓인 눈 위로 까마귀 몇 마리가 어깨를 웅크린 채 서 있었고, 알렉산드라는 그 모습만 세상을 다 안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리들 양.”
교사의 목소리가 정적을 가르며 떨어졌다.
“앞 방정식, 직접 시현해보게.”

교실의 시선이 한꺼번에 알렉산드라에게 몰렸다. 펜 끝들이 멎었다. 아이들 사이의 조용한 경쟁 속에서 단 한 명만이, 움직이지 않았다.

알렉산드라는 의자에 등을 기대 앉아, 천천히 눈을 돌렸다. 칠판 위의 문제를 보지도 않고, 단호히 말했다.
비효율적인 방정식은 시현할 가치가 없습니다.”

순간, 공기가 무너졌다.
분필이 교사의 손에서 미세하게 부서져 내려앉았다. 앞줄에 앉은 학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숨을 고쳤다.

“리들 양.” 교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혼자만의 교실이 아니야. 다른 학생들의 방해가 된다는 걸 모르나?”

알렉산드라는 고개를 저었다.

연필을 들어 종이를 눌렀다.
하지만 움직인 건 단 네 글자였다.

'잘.못.없.음.'

종이는 바람에 날려, 발밑에 내려앉았다.
이미 같은 말이 적힌 백지가 수십 장, 교실 구석구석에 쌓여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종이의 가장자리마다, 펜 자국조차 없는 하얀 면이 공기보다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뒤쪽에서 한 아이가 속삭였다.

“…또 시작이야.”
옆의 학생이 황급히 눈을 흘겼다. “조용히 해, 선생님 들으신다.”

그러나 이미 교실은 하나의 리듬을 잃은 상태였다.


그날 오후, 교무실.
긴 복도 끝, 무거운 문 안에서 회의가 열렸다.

"이 아이 하나 때문에 반 전체가 흔들립니다.” 담임이 말했다.
재정 담당 교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들이 낸 학비를 생각하십시오. 문제아를 단속하지 않으면 항의가 빗발칠 겁니다.”

“총명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한 교사가 조심스레 덧붙였지만, 교장은 고개를 저었다.
“총명함이 문제입니다. 그 아이는 ‘잘못 없음’만 되뇌며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는 순간 그 총명함은 가치를 잃습니다. 더군다나 이 학교에서는요.”

짧은 침묵이 흐른 뒤, 교장은 단호히 결론을 내렸다.
“리들 양은 퇴학입니다.”


.

.

.


그날 저녁, 집 서재.

알렉산드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퇴학 통지서를 어머니에게 건넸다.

학자인 어머니는 종이를 받아들고 잠시 눈을 굴려 읽더니, 가볍게 웃었다.
비웃음도, 조소도 아닌, 오래 전부터 답을 알고 있던 수학자가 검산을 끝낸 듯한 웃음이었다.

“잘못이 없다는 게 잘못이라니. 행정의 언어는 언제나 아이러니하지 않니?”

어머니는 종이를 접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예상보다 조금 빠르긴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됐구나.”

알렉산드라는 창틀에 걸터앉아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찼다.
“근데, 그게 왜 잘못이 돼요? 그냥 맞는 건데.”
아이의 목소리였지만, 묘하게 단호했다.

그때 문이 삐걱 열리며 두 살 어린 동생, 테론이 들어왔다. 팔에는 반쯤 부서진 장난감 비행기를 들고 있었다.
“누나, 진짜 쫓겨난 거야?”

알렉산드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응. 잘못이 없다고 했더니 잘못이래.”
말끝에 피식, 코웃음을 흘렸다.

어머니는 두 아이를 번갈아 보다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타이밍이 묘하구나. 방금 영국 쪽에서 네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테론, 넌 그쪽 학교로 보내겠다더라.”

방 안 공기가 순간 달라졌다.
알렉산드라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얘를? 얘는 착하잖아. 여기서 잘 버틸 텐데.”

테론은 대답 대신 장난감 날개를 고쳐 끼우려 애썼다. 어머니는 편지를 다시 집어 들며 담담히 말했다.

“착한 아이는 어디서든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학문은 착한 아이보다는 네 누나처럼 틀림없이 맞는 말을 주저없이 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알렉산드라는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눈 위를 스치듯 날아가는 까마귀 떼를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내가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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