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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첫 숨(상)

by 봄해
아내는 첫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양수가 터진 것 같아."


출근길에 걸려온 그 한마디에, 아이가 곧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고,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 절차를 마친 뒤, 아내는 분만실 침대에 누웠다. 의료진은 아이가 나오기 위해선 자궁이 충분히 열려야 한다고 했다. 그날 그곳엔 우리 둘 뿐이었고, 진통은 반나절을 넘어 길게 이어졌다. 그게 이렇게 긴 시간이 될 줄은 몰랐다.


아내는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진통에 몸을 웅크렸다. 의료진이 몇 차례 들러 자궁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했고, 그 사이 나는 긴장된 얼굴로 아내를 지키다 엉겁결에 배고프다고 말했다. 아내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뭐 좀 먹고 와."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병원 밖으로 나섰다. 병원 문을 나서자, 이상하리만치 하늘은 맑고 바람은 포근했다. 근처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서둘러 비우고 곧장 아내 곁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가족분만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곳에서는 남편도 모든 과정을 함께할 수 있었고, 출산이 끝나면 아이의 탯줄을 자를 수 있다고 했다. 내 머릿속엔 곧 태어날 아이의 탯줄을 자르는 순간을 어설프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밤이 깊어지자, 아내의 진통은 점점 더 깊고 거세졌다. 진통의 간격은 좁아졌고, 마침내 의료진은 분만을 준비했다. 나는 아내 곁에서, 길고 깊은숨을 따라 쉬며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다음부터의 일들은 너무 빠르고, 낯설게 지나갔다. 한 의료진은 주저 없이 아내의 배 위로 올라탔다. 두 팔로 아내의 배를 강하게 눌렀고, 아내는 이를 악문 채 신음을 뱉었다. 다른 한 명은 흡입기를 아이의 머리에 대고, 힘껏 당기고 있었다. 모든 것은 의료진의 판단대로, 마치 일상적인 절차처럼 거침없이 진행됐다. 나는 그 장면을 옆에서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낯설고 위태로운 광경 속에서, 나는 어쩐지 방해가 되지 않으려 입을 닫고, 뒤로 물러섰다. 아내가 내는 비명이 분만실에 울려 퍼졌지만 누구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간호사는 축하한다며 가위를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고, 떨리는 손으로 탯줄을 자르려 했다. 하지만 탯줄은 질기고 미끄러웠다. 여러 번 힘을 줘야 잘릴 수 있었다. 그 순간, 탯줄이 단순한 연결선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생명처럼 느껴졌다. 끊어내기 힘들 만큼 질기고, 끈질기게 버티는 그 감촉 속에, 생명의 강인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생명을 이어주던 끈이 끊긴 자리에서, 아이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살아야 했고, 그 끈을 끊어내야만 비로소 첫 숨이 시작될 수 있었다. 핏물에 젖은 얼굴로 울고 있는 아이는, 곧 초록색 보로 감싸진 채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아내는 배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사라진 무게가 남긴 공허가 아픔이 되어 아내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의료진은 건조한 말투로 "출산 직후엔 다 그렇다"며 이불을 정리하듯 덮어 주었다. 하지만 아내는 계속 아파했다. 그분은 마지못해 이불을 들춰보았고, 얼굴이 굳은 채 아무 말 없이 분만실을 나갔다.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내는 배가 아프다며 침대 위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의사와 또 다른 의료진이 분주하게 분만실로 들어왔다. 아내는 점점 더 창백해졌고, 배를 움켜쥔 채 거의 소리를 낼 힘조차 없어 보였다. 의사는 출산 중 자궁에 찢어짐이 생겼다며, 봉합을 위한 전신마취 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멈춰 설 틈이 없었다. 나는 무엇을 묻기도 전에, 그저 펜을 들어 사인했다. 아내는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이미 의식은 흐릿했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봉합 수술이 시작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의료진이 다시 나왔다. 지혈이 되지 않는다며, 즉시 종합병원 응급실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구급차 안에는 담당 의사가 동승했고, 아내는 팔에 수혈줄을 꽂은 채 이송됐다. 나는 뒤따라 운전대를 잡았고,


무력한 손끝은, 사이렌 소리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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