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병원 응급실.
자정을 넘기자, 피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응급실을 가득 메웠다. 침대 위에서 아내는 조용히 누워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바짝 말랐다. 양쪽 팔에는 수혈줄이 꽂혔고, 목덜미 아래에 굵은 줄 하나가 더 이어졌다. 얇은 목덜미 아래로, 붉은 피가 천천히 그 줄을 따라 흘렀다. 그 사이 아내의 자궁은 여전히 피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줄을 타고 흐르는 피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말없이 아내의 손을 잡았다. 차갑고 축축했다. 꽂혀 있는 링거 바늘이 빠질까 조심스러웠다. 새벽녘, 의료진은 출혈 부위를 찾아 막기 위해 '혈관조영술'을 시도했다. 몸속 깊은 혈관까지 가느다란 관을 밀어 넣어, 피가 터져 나오는 혈관을 찾아 그 길을 막는다고 했다. 그래도 피가 멈추지 않으면, 자궁을 적출해야 할지도 몰랐다. 시간은 늘어지듯 흘렀다. 의료진은 피가 멈췄다고, 이제 병실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닿는 순간, 온몸의 힘이 스르르 풀렸다. 안도가 밀려오고, 곧 깊은 피로가 머리를 짓눌렀다. 문득, 단순한 감각 하나가 떠올랐다. 배가 고팠다. 밤을 꼬박 새웠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나는 편의점에서 두유 한 병과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구석 자리에 앉아 천천히 씹었다. 맞은편에는 가족과 함께 온 이들이 수술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하는 자리에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목이 덜컥 메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이 지난 밤보다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나는 남편으로서 설명을 듣고 결정을 대신 내려야 하는 자리에 섰다. 그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아내 곁에 남은 사람으로서 남편이 되어가는 일이었다.
마지막 한 입을 베어 물고 병실로 돌아갔다. 침대 곁에 앉아 손을 잡았다. 잠시 뒤, 아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우리는 잠깐 서로를 바라보았고, 나는 밤새 있었던 일을 차분히 전했다. 아이는 건강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상하게도, 곧 표정이 가라앉았다. 병원에서 나온 미역국도 스스럼없이 먹었다. 아내는 링거 바늘이 꽂힌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당신도 고생했어.
오후 늦게 링거 바늘을 빼자마자 아내는 초유를 아이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 양손을 모아 젖가슴을 꾹꾹 눌러 짜냈다. 진한 노란빛의 초유가 깔때기 안으로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생각만큼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고개를 들어 내게 가슴을 좀 마사지해 달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손에 닿는 촉감은 단단했다. 응고된 듯 굳어 있었다. 손끝에 힘을 실어 천천히 눌렀다. 한참을 그렇게 어루만지자, 뭉쳐있던 살결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짜내는 젖. 그 몇 방울 속에, 아이를 품었던 시간만큼의 간절함이 고여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의료진은 자궁 안에 넣어둔 거즈를 꺼낼 거라고 했다. 나는 아내를 부축해 진료실로 데려갔고, 아내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거즈가, 너무 많더라."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거즈들은, 그날 아내의 몸에서 쏟아진 피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채워 넣었던 흔적들이었다.
그건, 우리가 살아오며 마주한 고통과 닮아 있었다.
피하고 싶었고, 감당하기 버거워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밀어 넣고 덮어둔 감정들. 언젠가는 그 감정들도 하나씩 꺼내어야 할지 모른다. 그날 밤, 병실 침대 위에서 나는 아내와 나란히 누웠다. 작은 원룸에서 함께 지내던 신혼, 비좁은 침대에 어깨를 맞대고 누웠던 밤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우리는 몸을 맞대고,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