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매의 얼굴과 팔, 종아리는 빨갛게 부어올랐다.]
집 마당의 잔디는 어느새 잡초로 뒤덮여 더는 잔디라 부르기 어려웠다. 두 주에 한 번씩 예초기를 돌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풀이 무성했다. 예초기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기들은 땀에 젖은 피부를 쉴 새 없이 물어댔다. 마당뿐 아니라 동산에도 긴 풀들이 자라 있었고, 산길을 따라 예초기를 밀고 나면, 마당에 쌓인 풀들을 아이들 넷이 갈쿠리로 긁어모았다. 그렇게 모은 풀은 양동이나 대야에 담겨 텃밭 한켠에 쌓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의 얼굴과 팔다리에는 모기 자국이 가득했다.
모두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 씻고 나오자, 아내가 미리 썰어둔 시원한 수박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두 손으로 수박을 움켜쥐고 허겁지겁 먹었다. 입가에 수박물이 흘러내렸고, 웃음소리와 함께 몸에 남아 있던 더위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나는 바닥에 흘린 수박물과 씨를 닦았고, 또 금세 흘린 무언가를 다시 닦아야 했다. 그 와중에도 어딘가 잠깐의 고요가 있었다. 어느새 그림책에 몰두한 아이들 사이로,
아내는 깔끔해진 마당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작은 마당은 늘 무언가로 살아 있었다. 막내가 소변이 마렵다고 하면 굳이 화장실까지 뛰어갈 필요가 없었다. 마당 한켠에서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본 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돌아섰다. 눈치를 줄 이웃도 없었고, 이 작은 마당은 우리들의 움직임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그 자유로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는 오히려 아이들을 보며 새삼 깨닫곤 했다.
풀숲에서 개구리가 데크 위로 튀어 오르고, 작은 도마뱀이 벽을 타고 오르는 건 일상이었다. 어느 날은 뱀이 나타나기도 했다. 나는 얼른 막대기를 집어 들고 녀석을 잡았다. 그러다 힘없이 늘어진 뱀이 막대기 끝에 걸려 반동을 타더니, 지켜보던 아이들 발밑으로 떨어졌다. 모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며 도망쳤고, 놀람과 웃음이 뒤섞인 소란이 마당을 채웠다.
지저분하고 위험하니 하지 말라는 말은 이곳에서 서서히 잊혀 갔다. 누군가의 행동을 조절하기 위한 통제는 어느덧 허용과 동행으로 바뀌었다.
[땀에 젖은 얼굴과 머리카락.]
아내는 끈질긴 리듬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다잡으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치열한 집중이 어쩐지 독하게 느껴졌다. 조금 전, 아내는 데크 한가운데서 줄을 손에 쥔 채 바닥을 두어 번 짚으며 숨을 고르고는 뛰었다. 나무 데크를 차는 소리와 줄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이 일정한 박자로 울려 퍼졌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은 턱선을 따라 목덜미로, 다시 어깨로 떨어졌다. 얇은 옷은 등에 달라붙었고, 호흡은 거칠어졌지만 눈빛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아내는 쉬지 않고 뛰었다. 큰 남매는 줄 하나를 넘기도 버거워했지만, 해가 바뀌고 계절이 지나자 스스로 숫자를 세며 몇천 개씩 줄을 넘게 되었다. 그 중심엔 늘 아내가 있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가끔 놀랐다. 어디서 저런 힘이 솟아나는 걸까. 때로는 그 단단한 기세가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 독기 어린 꾸준함이 우리를 매일 움직이게 했고, 무너뜨리지 않게 지탱해 주었다.
의료진은 아내의 자궁벽이 얇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뱃속의 아이는 결국 그 벽을 지나 세상으로 나와야 했다. 육아는 그 경계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었고, 네 남매 역시 언젠가는 그 벽을 넘어야 했다. 잠시 외부로부터 보호받을 수는 있어도, 이곳은 결국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의 자리였다.
우리는 아이들이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를 바랐다. 처음 마주하는 타인 앞에서 자기감정을 먼저 알아차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마음을 처음 배운 곳이, 이 집 안에서의 갈등과 화해였으면 했다. 낯선 이름들, 다른 가치들, 알 수 없는 눈빛 속에서도 아이들이 처음 줄넘기를 배웠던 것처럼 그 꾸준함으로 살아가길 바랐다.
나는 길 옆에 세워둔 차에 올랐다.
시동을 켜자 조수석 창문 너머로 펭귄 같은 아이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차를 돌리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손을 흔들며 고함치듯 말했다. 아파트 단지였다면 시끄럽다며 눈치를 주었을지 모르지만, 이 외진 곳에서는 그 소리마저도 평화롭게 들렸다.
"아빠, 잘 갔다 와!"
"사랑해..."
이해와 공존, 사랑과 혼란이 뒤엉켜 흐르는 하루의 시작엔 언제나 출근길을 배웅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운전대를 잡은 내 손끝에 생생히 남았고, 줄곧 내 삶을 따라 흘러왔다.
그리고 언젠가 삶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나는 다시 그 소리를 떠올릴 것 같았다. 세미한 울림으로 되살아나 내 안에 닿을 같은 그 모습은,
죽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