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기차는 철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어린 아내는 작은 손으로 창틀을 붙잡고, 창밖 어둠을 가만히 바라봤다. 검게 펼쳐진 들판 저 너머, 누렇게 부푼 달이 떠올라 있었다. 그런데, 그 달이 유리창 너머로 자꾸만 따라붙는 것 같았다. 기차가 어둠 속을 아무리 달려도, 달은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가까워지는 듯했다. "왜, 저 달이 나를 따라오는 걸까…" 아직 여린 마음에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퍼졌다. 기차는 밤의 어둠을 쉼 없이 달렸고, 달은 끝내 어린 아내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은 채, 끈질기게 따라왔다.
아내는 먼 미국에 있는 처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제는 몇 해 전, 결혼과 출산을 마친 뒤 아이가 첫돌이 지나자 낯선 땅으로 건너가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처제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을 때면, 자꾸만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아내는 그런 처제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시간을 천천히 더듬어 보았다. 네 번의 임신과 네 번의 모유 수유. 그 오랜 시간 동안, 매달 널뛰던 생리의 주기는 고요히 가라앉았다.
자궁이 푹 쉬는 것 같아.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 시절, 아내의 자궁과 몸은 오랜 쉼을 누리고 있었다. 주기적인 통증과 불규칙한 흐름에서 벗어나 생명이라는 씨앗을 품었고, 이어진 수유의 시간 동안 고요한 휴식에 잠겼다. 그리고 어느 날 다시 생리가 찾아왔을 때, 이전의 검붉었던 색은 선홍빛으로 맑아져 있었다. 마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균형이 몸 안에 스며든 듯했다. 아내는 통화를 마치고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어느새 남원 시골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여동생과 함께 장에 내놓을 농작물을 바구니에 담던 기억, 흑염소를 둘이 힘을 모아 몰던 순간들이 스쳤다.
아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뒤로 여동생은 홀로 집에 남았다. 어느 비 내리던 날, 언니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한 여동생이 찌그러진 우산을 들고 학교 운동장까지 찾아왔다. 운동장 한켠, 작은 우산 아래 쪼그려 있던 여동생은 선생님 손에 이끌려 교실로 들어왔다. 그날 하굣길에는 누군가 건네준 하얀 우유 한 팩이 여동생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어느새 여동생도 학교에 입학하자, 아내는 매일 아침 동생의 머리를 묶어주고, 알림장을 읽고 동생의 책가방을 챙겨주었다. 마치 기차 안에서 누런 달이 밤마다 자신을 따라왔던 것처럼, 아내 또한 묵묵히 여동생의 뒤를 따라가곤 했다.
아내의 꿈은 어쩌면, 이른 나이에 이미 엄마가 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해가 저물 무렵,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찾던 소리. 낡은 담장 아래 나란히 앉아 바라보던,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 그 모든 기억이 아내의 마음속을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시절 지워지지 않는 꿈이 애틋함이 되어 머물러 있었다.
아내의 몸이 오랜 쉼을 누릴 때, 나 역시 곁에서 그 시간을 함께 견뎠다. 아이 울음에 밤이 무너져 내렸고, 피곤한 눈으로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 고단함 속에서 작고 단단한 쉼이 피어났다. 아내가 몸으로 겪어낸 회복의 시간처럼, 나도 육아라는 이름 아래에서 비슷한 쉼을 얻고 있었다. 반복되는 고단함 속에서 나는 외부의 자극과 욕망에서 점차 멀어졌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웃음과 눈물을 지켜보며 내 마음 한편에 고요한 평온이 깃들었다. 그 안에서 나는 알지 못한 오래된 본능을 발견했다. 본능이 늘 원초적이고 거친 것만은 아니었다. 아이를 품고, 기다리고, 돌보는 그 느린 시간의 흐름 안에서 나는 어느덧 그들과 함께 잠들고, 일어났다. 내게 육아는 아이를 품는 일이자 스스로의 쉼을 찾는 일이었다.
나는 밤하늘의 검푸른 어둠이 되었고, 아내는 그 위에 떠 있는 달이 되었다. 아내가 아이들의 밤을 비추고 있을 때 나는 그 달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묵묵히 배경이 되어주었다. 아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품었던 자신만의 빛으로 아이들을 비출 때, 나는 그 달을 경이롭게 바라봤다. 그때, 나는 그 달을 동정했다. 그건 아내보다 위에서 건네는 연민이 아니라, 고단한 하루 끝에 서로의 마음이 닿는 평등한 동정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내가 달을 두려워하던 그 시절을 이해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 안에 머무는 혼란과 평온을 탐구하고 싶었다. 단순히 아내를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아내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닿고 싶어 하는 낮아진 동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탐했고, 서로를 품으며 수많은 밤을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