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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4)

토끼에게 간은 없었다

by 봄해

이미지 출처: ChatGPT 생성형 AI — 실제 인물이 아닌 ‘상징적 인물’의 표현입니다.


수도에서 물이 터지자, 스테인리스가 짧게 울렸다.


큰애가 아내 팔을 딛고 올라가 가슴 쪽에 얼굴을 묻었다. 옷이 한 번 부풀었다가 내려앉았다. 아내는 그릇을 헹구다 말고 한 손으로 가슴 부분을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천 사이로 미지근한 우윳내가 흘러나왔다.


아이가 미끄러지듯 내려오더니, 한 발 물러나 아내 등 뒤로 파고들었다.


아내의 맨발이 젖은 마루 위에 나란히 서 발목이 가늘게 드러났다. 발가락이 안쪽으로 한 번 말렸다가 펴지며 바닥을 짚었다. 상체가 앞으로 조금 더 숙여지면서, 허리가 뒤로 빠졌다.


작은 손이 뒤에서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아이 몸이 뒤로 당겨지는 동안, 뒤쪽 천이 같이 끌려 올라갔다. 허리 아래에서 걸리던 옷이, 허벅지 중간쯤에서 멈춰 섰다.


허벅지 뒤가 무릎 위까지 드러났다.

굽힌 다리 근육이 부엌등 아래에서 가늘게 솟았다. 젖어 있던 치마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허벅지 뒤를 따라 길게 흘러내렸다. 살 위로 그어진 물길이,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처럼 또렷했다.


아내는 그릇을 놓지 않았다. 팔을 더 뻗어 접시를 들어 올렸다. 허리 아래로 젖은 옷이 엉덩이 곡선을 따라 딱 붙어 있었다.


짧은 숨이 아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여보, 큰애 좀 데려가."


나는 다가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 다른 손으로 말려 올라간 치맛단을 더듬었다. 내려주려던 손가락이 먼저 드러난 허벅지 뒤살을 스쳤다. 젖은 피부가 짧게 움찔했다. 손이 허벅지선을 따라 위로 미끄러져 올라가 허리 아래 고무줄 자국에 닿았다. 그 자리에 잠깐 머물다, 엉덩이 옆살을 한 번 가볍게 움켜쥐었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닥을 한 번 스치고, 마땅히 향할 곳을 아는 듯 배수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뭐 해, 진짜."

아내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어쩜 애랑 똑같이 굴어…"


아내가 헹구던 그릇을 잠깐 내려두고, 손으로 치맛단을 한 번 털어 내렸다. 말려 있던 옷자락이 허벅지를 다시 덮었다. 허벅지 뒤를 타고 내려온 물길만 부엌 불빛 아래에서 가늘게 남았다. 큰애가 내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팔을 다시 아내 쪽으로 뻗었다.


"이리 줘."

아내가 손을 털며 맨발로 마루를 살짝 밀고 다가왔다.


아이가 다시 아내 가슴에 얼굴을 묻자, 옷이 안쪽으로 깊게 잡아당겨졌다. 가슴께에 젖 자국 두 엇이 박혀 있었다. 그 아래로 젖가슴이 천을 묵직하게 밀어 올렸다. 부엌 불빛 아래 푸른 선들이 가슴 밑에서 겨드랑이 쪽으로 가느다랗게 뻗어 있었다. 가슴 끝이 얇은 옷을 살짝 밀어냈다.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싱크대에서 흘러내린 물 몇 방울이 마루를 적셨다. 손톱만 한 얼룩이었는데, 눈에는 잠깐 웅덩이처럼 번져 보였다. 그 위로 내 다리와 아내의 맨발이 겹쳐 서 있는 게 얼비치는 것 같았다.


아내의 맨발이 웅덩이 가장자리로 한 걸음 다가섰다.


큰애가 몸을 비틀더니, 아내 품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아이 발소리가 멀어졌다. 아내가 아이 쪽을 한 번 보더니, 나에게로 눈을 돌렸다.


"어제 그냥 자버려서, 미안해..."

조용한 목소리였다.


나는 싱크대 옆에서 등을 떼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나도…"

말이 짧게 나왔다.


"괜히 당신만 더 피곤하게 만든 것 같아서."

아내 입가에 짧은 웃음이 스쳤다.


"그래도… 좋긴 했어."

싱크대 안의 그릇들을 보면서 말했다.

"요즘은, 거기까지 가는 것도 잘 안 되잖아..."


나는 옆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어깨와 팔이 닿았다.

옷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이, 발밑 물웅덩이 속 그림자까지 데우는 것처럼 아래에서 올랐다.


아내가 잠깐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훑었다.


"근데 오늘은, 계속 딴 데 보고 있는 것 같네."

눈을 조금 가늘게 뜨고 물었다.

"어제 뭐 있었어? 건물 조사 나갔다며."


"뭐... 조사야 매일 나가지."

말이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여관 하나 갔어. 여성 전용으로 영업하는 데… 젊은 여자 혼자서 받더라, 여주인이라고."


나는 바닥의 물웅덩이를 내려다봤다. 그 안에서 아내의 어깨와 내 팔이 한 덩어리처럼 붙어 있었다.


"처음엔 그냥, 좀 낡은 건물이다 정도였는데…"

숨을 한 번 들이켰다.

"복도 끝에서 돌아보는데, 그 여자 머리 위로 흰 귀 같은 게, 토끼 귀처럼 쑥 올라와 있더라…"


아내가 눈을 크게 떴다.

"귀? 진짜로?"


"진짜였는지, 내가 잘못 본 건지 모르겠어."

목 안쪽이 말라서, 소리가 조금 갈렸다.

"밤에 자는데, 그 모습이 그대로 꿈에 또 나왔고…"


싱크대 벽면에 붙어있던 물 한 방울이 더 버티지 못하고 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아내가 내 두 손을 잡아 자기 허리 양옆으로 가져다 댔다. 옷 너머로 허리선의 온기가 손바닥에 닿았다.


"꿈에까지? 꽤 예뻤나 보네."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세게 박혔네…"


아내가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갰다. 그리고 한 손을 떼어, 내 뺨을 한 번 쓸어내렸다.


"힘든 일 있으면... 좀 얘기하지."

눈동자가 살짝 젖어 있었다.

"그때 일 벌써 몇 년 지났는데, 아직도 여보 가끔 보면..."


가슴께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아내가 반 걸음 더 다가와 내 가슴에 몸을 기댔다. 가슴과 가슴이 맞부딪혔다가, 천천히 서로 모양을 맞췄다. 단단히 부푼 가슴이 내 가슴뼈에 눌리는 감각이 셔츠를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눌림이 안쪽까지 번져 왔다.


멀리서 막내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내가 먼저 몸을 조금 떼었다. 가슴께의 젖 자국이, 안쪽에서 밀려 나온 것처럼 옅게 번져 갔다.


"여보. 숨, 놓지 말고…"

내 가슴께에 아내가 이마를 한 번 더 대고, 숨을 길게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오늘 퇴근하고, 또 얘기해."

아내가 말했다.

"그 여관 얘기도 하고… 어제 못 끝낸 것도."


손이 다시 내 허리춤을 한 번 쥐었다 놓았다.


"오늘은, 다 들어줄게."

입술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오늘 밤은, 다 받아줄 거야… 빨리 와."


발밑의 물웅덩이가 천천히 퍼져 나갔다. 아내가 막내에게로 돌아간 자리에는 내 그림자만, 물 위에서 조금 흔들리며 서 있었다.





"다녀올게…"


계단을 내려가며 우산을 반쯤 폈다. 잔비가 흩어지고 마당 흙길에 작은 웅덩이가 번들거렸다.


물방울이 맺힌 손잡이를 당겨 차 문을 열었다. 계기판 불이 켜지고, 와이퍼가 유리를 두 번 쓸었다. 감귤밭이 뒤로 밀리고, 젖은 흙냄새와 잎의 풋내가 조용히 퍼졌다.


신호등 아래 정지선을 지나며 액셀을 살짝 밟았다.


붉은빛이 젖은 노면 위에 가느다란 선을 그었다. 깜빡이를 올리자 바퀴가 물막을 가르며 골목으로 비껴 들었다. 차고 앞 웅덩이를 돌아 주차했다. 문을 열자 빗소리가 금세 커졌다.


발소리가 계단을 타고 오르자, 자동문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우산을 털어 거치대에 꽂고, 매트를 한 번 밟아 물기를 털었다. 옷장 앞에서 젖은 소매를 훑고 근무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천장 스피커가 '지직.' 숨을 섞더니, 빠른 벨음이 이어졌다. 복도 끝에서 사람들 발소리가 빠르게 모였다가 흩어졌다.


사무실 문을 미니 모니터 불빛이 먼저 보였다. 이수가 화면을 붙들고 앉아 있었다. 지나가며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고 내 자리에 몸을 붙였다.


"긴 밤이었지? 당직은?"


이수가 짧게 하품을 삼키고 고개로 답했다. 서랍을 열어 공무원증을 밀어 넣고, 업무폰 화면을 켜 내 쪽으로 돌렸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짧은 경종음이 사무실을 스쳤다.


"동화여관? 일찍 고쳤네."


"저희 가고 업체 불러서 바로 고쳤대요."

이수는 의자를 밀어 넣고 몸을 길게 펴더니, 가방끈을 어깨에 걸고 손바닥으로 머리칼을 쓸었다.


"오늘은 이행 완료만 두 군데 갔다 오면 될 거예요."

이수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문턱에서 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손 안에서 차 키를 굴리다 멈췄다. 기록지의 경종 불량과 관계자 연락처에 시선을 고정한 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ㅡ


짧은 소리가 숨겨 둔 두려움을, 수면 아래에서 맺힌 물방울 하나가 조용히 떠오르듯 살짝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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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잊히지 말아야 할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며 쓰였습니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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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