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인수(1)
이 글은 「꼭, 무연고 처리해 주세요」의 첫 화로, 단체의 낭독 요청에 따라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하였습니다.
육아휴직 동안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제주의 한적한 마을로 이사했습니다.
제주에 어떤 특별한 연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토록 쉽게 이주를 결정할 수 있었는지 저도, 아내도 선뜻 말로 설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시절 저희에게 연고가 되어준 것은 서로에 대한 충분함과 품 안에 안겨 있던 두 아이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서로를 만나기 오래전부터 이어진 잦은 이사 탓에, 어느 곳도 연고지로 느껴지지 않는 삶을 익혀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내와 아이가 제주에서 겨우 자리를 잡을 무렵, 저는 홀로 육지로 올라와 복직을 준비했습니다.
어느새 복직한 지 일 년이 되었고, 주말마다 제주로 내려갔습니다. 상반기에 무산됐던 시·도 간 인사교류가 하반기에 들어서야 성사되었습니다. 그날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주문한 꽃을 챙겨 공항으로 향할 생각이었습니다.
주문한 꽃을 받았을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통보와 시신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집을 떠나오신 지 스무 해 만에야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예매해 두었던 비행기 표를 취소했습니다.
수원 빈센트병원 차디찬 영안실에서 달라져 버린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인이 맞는지, 인수하여 장례를 치를 것인지를 옆에 있던 직원이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오래전 집을 떠나시며 주소 하나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남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길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 계실거라고 생각하며 그 삶과 죽음을 떠올려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길게 망설이지 않고 시신 인수 서류 위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빈소는 마련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입관을 위한 참관실에서 고인의 마지막 얼굴을 바라보며 짧게 애도를 건넸습니다. 그 순간조차 어색했고, 마음은 이상할 만큼 잠잠했습니다.
발길을 돌리던 찰나, 사망진단서에 적힌 주소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서류상 거주지불명으로 남아 계시던 분이었기에, 그 주소는 세상을 떠나기 불과 얼마 전에야 겨우 올라간 한 줄이었습니다.
말 한 줄 적혀 있지 않은 유서처럼 느껴졌습니다.
연고자가 없는 죽음. 그 죽음이, 유일한 자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바다를 건너 저를 찾아냈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스무 분쯤 달려 낡은 상가 앞에 섰습니다. 차를 세우고 한 층을 올라가자 좁은 통로에 문들이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그곳을 관리하는 분이 문을 열고 나와 저를 맞았습니다.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사진을 보여드리며 사망하신 것과 제가 아들이며 방을 정리하러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통로 끝 아버지 방으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고인이 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 문을 열었습니다.
고작 한 평 남짓 한눈에 들어오는 방이었습니다. 작은 냉장고 문에 빈 로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또렷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침엔 당뇨약. 저녁엔 혈압약.
그 아래, 고인의 마지막 말이 덧붙어 있었습니다.
꼭, 무연고 처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