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에게 간은 없었다
이미지 출처: ChatGPT 생성형 AI — 실제 인물이 아닌 ‘상징적 인물’의 표현입니다.
수도꼭지 물줄기가 냄비 뚜껑을 세게 때렸다.
튄 물 몇 방울이 싱크대 밖 마루에 톡 떨어졌다. 나뭇결을 타고 번진 물이 발 앞에서 둥글게 모였다. 손바닥만 한 얼룩인데, 불빛 아래에서는 작은 물웅덩이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맨발이 그 위를 밟자, 발바닥이 살짝 미끄러졌다.
물소리가 잠깐 약해질 때마다 귀가 저절로 현관 쪽으로 기울었다. 집 안에 남은 숨소리를 끝까지 더듬었다.
ㅡ삑, 삑삑.
현관 쪽에서 번호키 눌리는 소리가 짧게 튀어 올랐다.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설거지하던 손을 물속에 멈춘 채, 숨만 들이켰다. 발 뒤꿈치가 현관 턱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가 방 문을 살짝 열었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작은 숨소리와 큰애 코 고는 소리가 문틈을 타고 새어 나왔다.
싱크대 앞까지 발자국이 밀려오자 나는 물줄기를 잠갔다. 손등으로 티셔츠 앞자락을 훑어 물기를 닦았다.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뒤로 팔을 뻗었다. 남편 손목을 더듬어 잡아 허리 옆으로 끌어 붙들어 두었다.
남편 숨이 귓가에 닿았다. 옆구리 쪽에 있던 손이 가슴 아래쯤까지 올라왔다가 멈췄다.
나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 상체를 조금 숙였다. 아랫배가 뒤 쪽으로 더 밀려갔다. 숨을 들이켜는 사이 허리선이 살짝 느슨해졌다. 고무줄이 골반을 스치며 아래로 미끄러졌다. 가슴 안쪽으로, 모유가 찰 때마다 일던 둔한 당김이 다시 번져 들어왔다.
그의 손이 허리를 둘러 몸을 바짝 밀어붙였다. 싱크대 앞턱이 아랫배를 깊게 눌렀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오늘 내내 비워 둔 쪽으로 그의 무게가 밀려왔다. 나는 싱크대 턱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가 흔들렸다.
작은 웅덩이가 실제보다 부풀어 오른 화면처럼 어른거렸다. 나는 시선을 물에서 떼지 못했다. 물 위에서 남편의 등과 내 허리가 붙을 때마다 가슴이 움찔했고, 허벅지와 골반 안쪽 근육이 잘게 부서지듯 조여왔다.
그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졌다.
내 등에 닿아 있는 남편과 웅덩이 속에서 뒤늦게 따라오는 모습이 서로 달랐다. 그는 나를 끌어안기보다 등 뒤 어딘가 보이지 않는 것을 붙든 채 버티는 사람 같았다.
배 앞을 감싸고 있던 팔이 힘을 놓았다. 말려 올라가 있던 티셔츠가 옆구리로 다시 내려왔다. 잠시 비어 있던 자리에 양팔이 내 허리를 감쌌다. 이마가 허리 아래쪽 어딘가에 툭 닿았고 그는 내 뒤로 주저앉았다.
나는 싱크대에서 몸을 떼어 돌아섰다.
발등이 고인 물을 살짝 밀자, 옅은 물결이 우리 둘의 그림자를 흐트러뜨렸다. 벽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주저앉은 남편이 무릎 사이에 손을 늘어뜨린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두 무릎을 바닥에 붙이고 상체를 굽혀 그의 얼굴을 안았다.
샤워기에서 나온 뜨거운 물이 가슴 쪽으로 번져 갔다.
싱크대에서 냄비 뚜껑을 때리던 물줄기가 이번에는, 내 젖가슴 위를 세게 두드렸다. 물줄기가 부풀어 오른 가슴 윗선을 타고 젖꼭지 끝에서 잇달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벽에 손을 짚고 상체를 더 숙였다.
소희라는 이름이 물소리 틈으로 떠올랐다. 긴 귀, 대대로 이어진 집안, 감내자. 그 말들이 머리 위를 한 바퀴 돌았다가 뜨거운 김 속으로 흩어졌다.
내 팔 안쪽에 파묻혀 있던 남편의 얼굴이 뒤따라 올라왔다. 긴 귀를 봤다고 하던 눈, 그 세계 안에 같이 있었다고 말하던 입술. 물줄기가 그 얼굴을 훑어 무릎을 타고 바닥에 모였다. 긴 귀와 소희라는 이름이 물과 함께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물을 잠그고 거울을 올려다봤다. 젖은 머리카락, 조금 벌게진 가슴 윗선이 비쳤다.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김이 천천히 퍼졌다. 수건으로 물방울만 툭툭 닦아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주방 불빛이 바닥을 타고 문턱과 발등을 덮었다. 몸에서 아직 뜨거운 기운이 스멀거렸다. 나는 배와 허벅지를 드러낸 채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이 짧게 흔들리고, 남은 물기가 등허리를 타고 엉덩이와 허벅지 뒤로 굴러 내려갔다.
식탁 원목 긴 의자에 그의 등이 기댈 데 없이 말려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뻗어 목덜미를 감쌌다. 가슴과 배, 골반이 차례로 그의 등에 닿았다. 젖가슴이 조용히 위로 모였다.
"소희… 긴 귀 얘기… 아직 머릿속이 엉망이야."
나는 상체를 숙여 입술을 귀 옆까지 가져갔다.
"그 상처… 우리 둘 다 없애진 못하겠지."
젖은 입술이 한 번 다물렸다가 다시 열렸다.
"그래도 거기서 당신을 끌어당기는 것보다…"
나는 팔을 더 조였다.
"내가 여기서 더 세게 안아 줄게."
"거기서 뭘 바꾸든, 뭘 망가뜨릴까 무섭든… 당신이 앉을자리는 여기야."
남편 등이 뒤로 천천히 기대 왔다. 등에 받힌 젖가슴이 한 번 더 부풀어 올랐다. 나는 허리를 세워 그를 바짝 끌어당겼고,
배 깊은 데서 막 트인 숨이 조심스럽게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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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잊히지 말아야 할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며 쓰였습니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