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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Aug 31. 2023

나는 당신을 생각했다, 그래서 썼다.



쓰는 행위에 마음이 담겼던 최초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편지봉투와 그 안에 들어있던 연예인 뱃지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 나는 굳이 한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우편으로 편지를 부치는 애였다. 다정한 친구들은 유난스러운 나의 응석에 곧잘 응해주었고 그 시절 유행하던 대왕편지지에 빼곡히 편지를 적어 좋아하는 잡동사니와 함께 나에게 같은 방식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런 우습고 깜찍한 펜팔은 놀랍게도 스무 해를 건너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친구가 보고 싶어지거나 때로는 그냥, 기억해두었던 친구의 주소로 편지를 부친다. 언제 읽어도 상관없을 마음에는 우표만 붙여보내고, 간절한 마음은 무려 익일특급으로 보낸다. ​


나에게 쓰기란 가장 절실하게 빚어낸 마음 같은 것이다. 쓰고 고치고 또 다시 써서 건네는 마음이라야 불안하지 않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오로지 당신을 생각했다는 신호였다. 나는 당신을 생각했다. 그래서 썼다. 이 두 문장이 내겐 가장 커다란 쓰기의 추동이었다.

이런 증명은 내게도 자주 필요했는데 나는 철저히 받고 싶은 마음을 주는 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서라기보다 사랑하고 싶어서 쓰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욕심 많은 나는 매일 최대한 많이 썼다. 일기를 쓰고, 먹은 것을 기록하고, 본 것을 적었다. 내가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기록하는 것이 곧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


20년에 걸친 쓰기 대장정을 돌아다보면 그것은 한 뭉텅이 같다가도 어느새 수십 갈래로 쪼개진다. 유독 심술이 나는 날에는 필사가 나를 달랬고 외로운 날에는 편지가 곁에 머물렀으며 아무날도 아닌 날은, 아무날도 아니었노라 일기가 무심히 정리해주었다. ​


앞으로는 또 어떤 쓰기 방식이 어디서 툭 나타나 내게 말을 걸어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그 방식이 무엇이든 나는 기꺼이 그렇게도 써볼 것이고 그 흔적으로 어떤 시절을 이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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