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과 불안은 더 이상 싫어만 하기엔 너무나 내 곁에 오래 살았다. 팽팽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리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야멸차게 군다. 너 방금 또 지나치게 간절했어. 제발 그러지 마. 간절하지 말자고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 그게 나인 걸 이젠 안다. 알아도 밉다. 나는 언제나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을 동경했으니까. 강박, 불안과 마찬가지로 간절함에 대해서도 나는 싫어하는 것까진 그만하기로 했다. 대신 미움은 사랑을 포함하는 말이라 믿는 사람이기에 미움에 기댄다. 결국 내가 나를, 자주 미워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맞다. 나는 내가 종종 그 이상으로 밉다.
눈을 뜨자마자 책을 펼치는 편인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오래도록 소리를 내어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내 목소리가 좋고 내 목소리로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이런 일들만 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 내 생활이라는 걸을 나름 꾸려간 이후로 얻은 몇 개 없는 소득 중 가장 순정한 것이다. 내가 나를 너무 오래는 미워하지 않도록 자연발생한 나만의 루틴. 아무것이나 먹으며 배를 채우는 일을 멈추고, 소리를 내어 책을 읽고, 그렇게 슬그머니 균형을 찾는 마음의 일을 들여다 보는 과정들.
사실 이제는 힘든 것도 좋은 것도 조금은 지겹다. 그것들은 모두 지나갈 테니까. 그러나 그 지겨움이야 말로 내가 도착하길 가장 기다리는 마음이다. 지겨움은 나에게 익숙한 나다움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진 것이 나라는 뻔한 사실을 알려준다. 극한의 긍정이나 부정이 아닌, 조금은 부정에 가까운 그 단어에 내가 안정을 느낀다는 게 좋다. 더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세밀해졌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함부로 단어의 뜻을 속단하지 않고 얼마간 곁도 내줘보는 인내심이 생긴 듯해 뿌듯하기까지 하다. 뚱하고 애매한 얼굴로 나에 관해 대수롭지 않은 발견을 하는 삶. 그게 내 일상의 거의 전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