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 <일기시대>
올해 처음으로 책을 읽으면서 매일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갑자기 이 책이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번뜩 생각나서 문보영, 일기를 검색하고 빌렸다. 보통은 무슨 책을 읽어볼까 이리저리 서치를 하다가 고르는 편인데 무슨 계시를 받은 것마냥 무의식 저편에 놓여있던 ‘문보영이란 사람이 쓴 일기를 모은 책’이라는 기억이 툭 튀어나왔다. 그리곤 과연 그건 계시였다. 지금 이 시절의 내가 반드시 읽어야 했던 책이었으니.
나는 시를 잘 모르고 자주 읽지도 않는다. 그래도 시를 대하는 자세만큼은 꽤 훌륭하다(?). 붙들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잘 모르겠으면 음 잘 모르겠구나, 하고 넘긴다. 포기하진 않는다. 모르면 모른 채로 지나갈 뿐. 그러다 만에 한 번정도는 아주 나중에 무언갈 겪고나서야 아 그때 그 문장이 그런 뜻이었구나! 한다. 그 감각이 꽤 마음에 든다. 그게 시를 읽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문보영이 썼다는 소설집을 한 권 읽었고 이번엔 그의 에세이(일기)를 읽었다. 그는 시인인데. 하지만 나는 소설-일기-시로 흐르게 된 이 순서가 좋다. 문보영의 소설은 되게 신기했다. 내 취향은 썩 아니었지만 그가 설명하는 상황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내 머릿속엔 그가 그려낸 하품의 언덕이 있다. 그 세계를 사는 인물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삶의 조건이 무엇이든 아랑곳 않고 자신답게 살았다. 뭘 하지 말라는 법칙이 있어도 몰래 그걸 했고 벌 같은 삶을 살아도 노래를 부르거나 글을 썼다. 나는 문보영의 소설에서 특별한 줄거리나 메시지는 기억이 안 나면서 이런 총체적인 느낌만이 남은 게 좋았다.
그리고 그의 일기를 읽었더니 그때 내가 느낀 것들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문보영과 소설 속 인물들은 똑 닮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아리송한데 사랑스럽고 슬프다.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잘 안다. 자신을 잘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끊임없이 생각하는 거겠지만 그 불안과 별개로 정보값이 늘긴 한다. 남들은 자신을 잘 알아서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몰라도 괜찮아서 안 하는 거다. 그러니 몰라서 불안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무언갈 많이 아는 사람은, 별 수 없이 좀 우중충하다.
일기에 온통 녹아든 그의 시 생각을 보고 있자니 그의 시가 읽고 싶어졌다. 그의 시부터 읽었다면 그 다음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이상한 순서 덕에 그가 쓴 소설도 일기도 시도 읽게 되었다. 그게 좋다. 게다가 그가 고수하는 삶의 루틴은 나의 매우 비슷하다. 그는 대체로 일어나서 산책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일기를 쓴 뒤 집에 와서 쉬다가 한 번 더 도서관을 다녀온 후 불면하는 밤을 보낸다. 걷고 일기 쓰고 걱정하고 또 쓰고 불면하는 것이다. 그는 나보다 글로 돈을 훨씬 많이 벌겠지만, 그래도 그 삶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또 있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며, 이렇게 사는 게 심지어는 멋지구나. 싶어서. (그 삶을 사는 본인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즐거웠다, 그의 일기를 읽는 일이. 이렇게 긴 후기를 남길 만큼. 무엇보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나까지 엉뚱해진다. 문보영처럼 말하게 된달까. 나는 엉뚱해지는 일이 잘 없어서 이 감각이 귀하다. 자주 읽어서 자주 엉뚱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