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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 소설
01화
다시 길 위에 서다 (1)
by
동그라미 원
Oct 14. 2025
다시 길 위에 서다 (1)
1부. 균열
민우의 방은 늘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두꺼운 암막 커튼은 낮과 밤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유일한 빛은 모니터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싸늘한 푸른빛뿐이었다. 그 빛 속에서 민우의 얼굴은 창백하게 빛났다. 아니, 빛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민우는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전교 상위권 성적, 단정한 태도, 어른들에게 깍듯한 예의. "민우네 부모는 복 받았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한 가벼운 취미였다. "야, 너도 이 게임해봐. 진짜 재밌어." 친구의 권유에 가볍게 시작한 온라인 게임. 하지만 그 세계는 민우가 알던 어떤 것과도 달랐다.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던 즉각적인 인정. 통제 가능한 승리의 쾌감. 명확한 목표와 보상. 게임은 민우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현실의 민우는 어딘가 모자랐다. 부모님의 높은 기대치는 늘 버거웠고, 중학교의 복잡한 인간관계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게임 속 '블랙 드래곤'은 달랐다. 강력했고, 길드의 중심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따랐고, 그의 명령에 움직였다.
"블랙 드래곤님, 오늘 공성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채팅창에 떠오르는 질문들. 그에게 의지하는 길드원들. 그들에게 민우는 필요한 존재였다.
아니, 블랙 드래곤은 필요한 존재였다.
학교를 빠지는 날이 늘어났다.
책상에 앉으면 머릿속은 온통 다음 공성전의 전략뿐이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희미한 배경음악이 되었고, 부모님의 꾸짖음은 귀를 막으면 사라지는 소음이었다.
방문은 굳게 닫혔다.
민우의 몸은 서서히 야위어갔다.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샤워는 일주일에 한 번이면 다행이었다.
등굣길은 점점 무거워졌고, 급기야 아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날이 생겼다.
어느 날 새벽, 길드 레이드를 마치고 화장실에 가던 민우는 거실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핏기 없는 피부. 퀭한 눈. 볼은 꺼지고, 머리카락은 기름기로 들러붙어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어스름한 새벽하늘이 보였다. 또 밤을 새웠다.
그때, 문득.'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공포가 밀려왔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 이대로 계속 간다면 어떻게 될까. 게임을 끊고 싶은데 끊을 수가 없다.
이미 너무 깊이 빠져버렸다.
민우는 숨이 막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두려움은 너무 거대해서,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방으로 도망쳤다. 게임을 켰다. 두려움을 잊기 위한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로그인 소리가 울리고, 블랙 드래곤이 게임 세계에 나타나는 순간, 불안은 사라졌다.
여기서는 내가 강하니까.
민우의 삶에 깊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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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2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살면서 깨닫고 어려움을 극복한 마음들을 글을 통해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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