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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

사우디에서는 여자는 운전을 못한다?

10년도 전의 유럽에서 영어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이었다. 학교에는 사우디 학생들이 꽤 많았다. 당시 사우디 정부에서는 자국민들의 해외 유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학생은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으며 한 가족이 모두 온 경우도 있었다. 사우디에서 온 학생들은 호주머니 사정이 달랐다. 한국,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 학생들은 비싼 수도권의 임대료 때문에 집의 한 칸만 임대를 했다. 화장실이나 부엌은 공용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사우디에서 온 학생들은 집 한 채를 빌리는 경우가 많았다. (오일 머니의 힘이란!!)


사우디 학생들 중에서 친해진 한 여학생이 있었다. 항상 히잡을 쓰고 다니던,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 친구였다. 하루는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내가 "너네 나라 참 부럽다. 돈이 많아서 외국에서 공부해라고 돈도 지원해 주고"라고 했다. 그러나 되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그 친구는 “자기 나라는 정말 싫다”라고 했다. 자기가 믿는 종교가 못 하게 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하였다. 또한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따라야 하는 규범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특히 사우디는 다른 이슬람 국가보다 더 보수적이었다. 심지어는 지금은 바뀌었지만 당시(2013년)에는 사우디에서 여자는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또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집안의 남자가 내려야 했다.


하루는 어느 날, 친구들과 펍에 맥주를 마시러 가려다가 그녀에게도 같이 가자고 권했는데, “못 간다”라고 했다. 내가 “맥주는 안 마셔도 되잖아. 다른 음료 마시면 되지 않아?”라고 했더니 “그래도 못 간다고 하였다. 맥주를 마시든 안 마시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펍에 출입했다는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반면 같은 사우디 출신의 남학생들은 종종 펍에 가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맥주를 마시기까지 했다. 누군가가 "맥주를 마셔도 돼?"라고 물어보니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여긴 사우디가 아니잖아.”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종교적 원칙은 같아도,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은 성별과 상황에 따라 너무 다르다는 걸 느꼈다.


또 다른 이야기. 90년대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이다. 당시엔 토요일에도 등교하던 시기였는데, 우리 반에는 토요일마다 학교를 빠지는 친구가 있었다. 자기 말로는 교회에 간다고 하였다. 교회는 일요일마다 가는데, 토요일날 가는 곳이 있다고? 그리고 고기를 먹지 않고 항상 채식만 했다. 그러다 보니 몸도 비쩍 말랐다. 하루는 “왜 고기를 안 먹어?”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나는 고기를 못 먹어"라고 말을 했다. 당시에는 고기를 먹을 수 없는 특이 체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기가 믿는 종교의 규범이었다. 자기는 고기를 먹고 싶은데 부모님이 못 먹게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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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친구의 종교가 힌두교라니?

라오스에서 봉사단원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친한 일본인 친구랑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을 알아봤다. 친구가 "소고기가 들어간 음식 빼고는 다 괜찮아"라고 말했다. 내가 "혹시 소고기 알레르기 있어?"라고 물어보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알고 보니 자신이 힌두교를 믿는다고 말했다. 예전에 인도에서 1년 정도 지냈는데 그때 개종했다고 하였다. 나는 놀랐다. 힌두교는 인도 고유의, 민족 중심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유대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게다가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외국인이 힌두교를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수드라(가장 낮은 계급)로 본다.” 물론 지금 시대는 돈이 곧 계급인 시대라서 전통적인 계급 구분이 얼마나 실제로 작용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외국인이, 그것도 일본인이 힌두교를 자발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꽤나 신선하게 들렸다. 인도에서 태어났거나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었다. 20대 때 1년 동안의 인도에서의 체류 경험이 종교를 바꾸게 한 것이다. 찾아보니 외국인이 힌두교 신자가 되는 건 아주 쉬웠다. 공식적인 절차나 승인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고, 믿음을 갖고 신을 섬기고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면 바로 힌두교 신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요가를 하고, 축제에 참여하며, 명상을 하거나 신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반면 유대교의 경우 외국인도 유대교 신자가 될 수 있지만 훨씬 복잡하다. 라비 재판소 앞에서 심사를 받고, 토라와 율법을 배우며, 남성이라면 할례를 포함한 의식을 치러야 하고, 여성이라면 정화 의식인 미크바를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공동체 안에서 ‘유대인’으로 인정받는다. 힌두교보다는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외국인도 충분히 유대교 신자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종교를 선택할 자유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교가 있다. 그리스에는 그리스 정교가 많지만, 지금도 제우스를 믿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단군을 믿는 ‘대종교’가 있고,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조로아스터 신을 섬기는 사람도 있다. 동양에는 불교나 도교처럼 신이 없는 종교도 있다. 그 형태와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자가 믿는 방식이 있다.


종교는 이 사회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힘들 때 마음을 위로해 준다. 역사적으로도 종교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우리나라 3·1 운동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가 개신교 신자였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천주교가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지금은 과학과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종교가 하는 역할까지 없어진 건 아니다. 사람은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고, 마음의 안정을 원한다. 결국 종교는 단순한 신앙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고 사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다.


하지만 종교가 ‘선택’이 아니라, 태어나서 따라야 하는 것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개종이 범죄인 나라가 아직 있고, 모태신앙을 버렸다는 이유로 가족과 멀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종교는 더 이상 마음으로 선택하는 믿음이 아니라, 사회적·법적 압력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본인 친구가 스스로 힌두교를 믿게 된 이야기는 새로웠다.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선택으로 믿음을 갖게 된 것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국가, 지역, 가정 등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사실상 99% 정도는 주변 환경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금품이나 노동, 성을 착취하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이비 종교나 이단은 논외다.) 부모님에게서 신앙을 물려받았다 해도,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며 믿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마음속에서 확신이 생긴다. 반대로 주변의 압력 때문에 억지로 따라야 하는 종교는 신앙이라기보다 부담이나 갈등을 만들 수 있다. 결국 종교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때, 삶에 도움이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힘을 줄 수 있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일부는 부모가 믿는 종교와 다르게 신앙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기독교 신자라도, 대학에 진학하면서 불교 명상과 철학에 흥미를 느껴 불교를 따르거나, 무종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한 신앙에서 삶의 의미와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고 보고된다. 혹은 한국의 경우 부모님이 불교를 믿더라도 어렸을 때 친구를 따라서 교회에 가서 받았던 좋은 기억으로, 나중에 정식으로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나의 주장이 너무 과격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이것이다. 종교란 단순히 부모나 사회가 정해 준 틀 안에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 스스로 묻고 선택할 때 진짜 의미를 가진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종교의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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