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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언어 - 에스페란토어

외국어 배우기의 어려움

나는 지금까지 영어, 라오스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여러 외국어를 공부해왔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왜 이렇게 많은 단어와 문법을 외워야 하는가" 였다. 나라마다 문법 규칙도 다르고, 발음도 다르고, 문화적 배경도 달라서 쉽게 익히기 어렵다. 한마디로 말해 외국어 공부는 쉽지 않다. 특히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그 나라 말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더 어렵다. 영어의 경우 초중고 12년 동안 학교에서 배웠지만, 아직까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할때면 더듬더듬(?)한다.


언어마다 발음에서 오는 오묘한 차이도 있다. 예를 들어 태국어에서 '쑤와이(สวย)'는 ‘예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의 성조를 음을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렸다가 다시 올리듯 발음해야 제대로 된 뜻이 전달된다. 그런데 실수로 평음으로 발음하면 ‘쑤와이(ซวย)’가 되어버리는데, 뜻은 ‘재수 없다’로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또 다른 예로 ‘까이(ใกล้)’라는 단어는 성조를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리면 ‘가깝다’는 뜻이지만, 그냥 평음으로 발음하면 ‘까이(ไกล)’가 되어 ‘멀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성조를 잘못 발음하면 아예 다른 의미로 해석되거나 혹은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영어의 한계와 불편함

영어는 현재 지구 공통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영어도 여러 한계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발음과 표기가 너무 달라서 배우기가 힘들다. 'rough’, ‘though’, ‘through’, ‘thought’ 같은 단어들을 보면 철자 규칙도 없고 발음도 제각각이다. 철자만 보고는 발음을 유추할 수 없고, 발음을 들어도 정확한 철자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건 비영어권 사람들에게는 큰 진입 장벽이다. 또한 영어는 언어 제국주의라는 비판도 받는다. 세계 대부분의 국제회의나 학술 발표, 심지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도 영어로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다른 언어와 문화가 소외되거나 위축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영어는 ‘언어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영어가 국제 표준처럼 자리 잡으면서 다른 언어와 문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영어 중심의 문화 속에서 다른 언어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려난다. 특정 국가의 언어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 언어 그 자체뿐 아니라 사고방식이나 가치관까지 그 언어가 끌고 가게 된다. 예를 들면 영어에서는 미래를 말할 때 must, will, should 등의 조동사를 반드시 쓴다. 예로 It will rain tomorrow. 그런데 중국어에는 그런 미래 조동사가 없다.

“明天下雨 → 직역하면 그냥 “내일 비 오다”이다. 이를 연구한 경제학자 케이스 첸(Keith Chen)은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미래 시제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미래를 현재처럼 느끼기 때문에 저축률이 높다.” 실제로 미래 시제를 강하게 구분하는 국가(미국, 영국)보다, 약하게 구분하는 국가(중국, 독일, 일본)의 사람들이 저축을 더 많이 한다는 통계도 있다.


국 영어는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일 수는 있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언어’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떨까? 한글은 분명히 뛰어난 문자 체계다. 소리의 원리를 담고 있고, 배우기도 어렵지 않다. 세계적으로도 그 과학성과 창제 원리에서 인정받는다. 하지만 한국어 자체는 결코 쉬운 언어는 아니다. 조사와 어미 변화가 너무 많고, 문법의 예외도 많으며, 상황에 따라 높임말도 복잡하다. 게다가 띄어쓰기는 한국인조차 헷갈릴 정도다. ‘띄어쓰기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농담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종종 생각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누구나 쉽고 공평하게 쓸 수 있는, 진정한 지구 표준어 같은 언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에스페란토어의 탄생

이런 언어의 불공평함과 복잡함을 해결하고자 19세기 말, 폴란드 출신의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는 ‘에스페란토’라는 인공어를 만들었다. 에스페란토는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름 자체에 이상이 담겨 있다. 자멘호프는 각기 다른 민족과 언어가 충돌하는 세상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쓸 수 있는 언어를 만들고자 했다. 에스페란토는 문법이 단순하고 규칙적이다. 불규칙 동사도 없고, 단어의 조합 방식도 직관적이다. 단어의 대부분은 유럽 언어에서 가져와 친숙하면서도 간결하다. 발음은 들리는 대로 읽으면 되고, 억양이나 높낮이의 실수로 뜻이 바뀌는 일도 거의 없다. 그래서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하다. 또한 단순한 표현한 가능한 기초 언어가 아니라 문학, 철학, 예술적 표현까지 가능한 완성형 언이이다. 그래서 ‘가장 평등하고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만약 에스페란토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었다면? 아마도 우리의 삶이 굉장히 많이 바꿨을 것이다. 우선 힘들게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스페인어나 중국어, 아랍어 등 제3 외국어도 굳이 취미가 아니라면 익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만든 사람이 동유럽 출신이다 보니 어휘가 아버지는 patro, 선생님은 instruisto 등등, 유럽어에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사용 인구도 많지 않고, 실생활에서 접할 기회가 적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하게 시작하는 언어’라는 점만큼은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


이상주의에 가깝고 실생활에도 쓸모가 거의 없는 이 언어를 누가 배울까? 의외로 여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전세계 100여개국에서 약 200만명 정도의 학습자가 있다. 한국에도 1976년 한국에스페란토협회(www.esperanto.or.kr)가 설립되어 현재 약 수천명이 익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있다.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도 열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에 개최되었다. 이들이 에스페란토어를 배우는 목적은 다양한데, 공정하고 중립적인 언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 언어학 연습(규칙적 문법과 쉬운 화법으로 언어학적 흥미 유발), 국제 교류, 언어 불평등에 대한 저항 등등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언어

에스페란토는 특별한 언어다. 어떤 나라 사람의 것도 아니고, 누구 하나에게만 유리한 언어도 아니다. 그저 ‘모두가 공평하게 시작할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졌다. 어느 한 나라의 힘이나 문화가 들어 있지 않아서,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같은 선에서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이름도 ‘희망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다. 반면 영어는 전 세계 사람들이 쓰는 공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영어는 누구에게나 쉬운 언어가 아니다. 철자와 발음이 다르고, 복잡한 규칙도 많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은 그 언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 결국 영어는 단순한 ‘소통의 언어’가 아니라, 정보와 기회, 권력까지도 좌우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해봐야 한다. “왜 우리는 특정 나라의 언어를 당연히 배워야 할까?”, “언어는 정말 모두를 위한 도구가 되고 있을까?” 에스페란토가 완벽한 언어는 아닐지 몰라도, ‘누구나 쉽게, 평등하게 배울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 생각만으로도, 이 언어는 지금도 의미가 있다.


그럼 마지막으로 에스페란토어를 몇 마디 배워보자

1. 나는 너를 사랑해 → Mi amias vin

2. 에스페란토어는 평화와 평등의 언어입니다 → Esperanto estas la lingvo de paco kaj egaleco.


사진 perplexity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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