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첫눈이 내렸다
어느 시인은 첫눈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도라고 했다. 또 어느 시인은 첫눈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이라 헸다. 누구에게나 첫눈은 아름다운 맑은 기억이다. 오래전 가슴에 묻어두었던 순수와 아직 손상되지 않은 희망을 끝내 말하지 못하는 마음 같은 것.
밤새 첫눈이 내렸다. 세상은 잠들어 있는 듯 하늘은 조용히 흰빛을 흩뿌렸다. 거리의 풍경은 순식간에 낯선 설국으로 변했다.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하얀 세상을 확인했다. 그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흰빛의 조용한 충만함이 더 고요하게 다가왔다.
나이가 더해가면서 첫눈은 더 이상 감성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이젠 현실적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 길이 미끄러울까, 출근길이 막히지 않을까,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넘어지지는 않을까. 젊을 땐 첫눈이 오면 그저 설레었다. 사랑을 확인하듯 약속을 잡고, 무작정 창밖을 내다보며 하얀 세상을 품에 안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 한 겹, 두 겹 더해지면서 설레기 전 먼저, 괜찮을까 불편하진 않을까 낭만보다 눈의 무게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 변화가 조금은 슬프면서도, 어쩌면 자연의 순리인지도 모른다. 눈을 기다리는 마음이 보다 지켜야 할 삶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첫눈을 보며 감정이 무뎌진 것보다, 삶을 품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첫눈은 이상할 만큼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차갑게 내린 눈이 마음속 얼어붙은 부분을 오히려 녹이는 역설. 세월이 흘러도, 바쁜 일상에 마음이 거칠어져도, 첫눈 앞에서는 잠시 멈춘다. 잊고 지내던 다정함이 고개를 들고, 오래 묻어두었던 추억이 조심스레 숨을 쉰다. 누군가의 손을 따뜻하게 잡고 싶고, 멀리 있는 이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첫눈이 내리면,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춘다. 바쁜 일상도 차가운 현실도 그 순간만큼은 멀어지고, 흰빛이 세상을 덮듯 마음 위에도 온기가 든다. 첫눈은 세상이 조금 각박해지더라도, 감성이 예전만큼 날렵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감성은 줄어든 게 아니라 익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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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렸다. 느닷없이 불쑥 찾아왔다. 삶도 때로는 예기치 않게 찾아오고, 조용히 쌓이고, 어느새 풍경을 바꾼다. 삶은 그저 눈처럼 내려오는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추위 속에서도 삶의 무게 속에서도, 여전히 첫눈처럼 희망은 아름답게 존재한다. 첫눈은 말없이 속삭인다. 삶이 아무리 복잡해도, 마음 한 구석에 남겨둔 작은 순수 하나가 나를 지탱한다고. 그리고 그 작은 순수가 바로, 산다는 것의 가장 따뜻한 철학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