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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은 삶을 가르친다

삶의 진리는 언제나 기본에 있다

by 현월안




목이 뻐근해서 한의원으로 갔다.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 공간은 묘하게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마치 세상의 논리가 잠시 멈추고, 오직 그곳에서만 유효한 어떤 원리들이 작동하는 작은 우주 같았다. 신경외과에서 누적된 피로와 자세 문제로 디스크 초기 증세가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던 이후로,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한의원의 진료실에 앉자마자 원장님은 내 목을 몇 번 만져보더니 담담히 말했다.



자세가 안 좋아서 혈의 흐름이 막혀서 그렇고 또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졌다는 말을 했다. 병의 이름이나 진단의 문장은 전혀 달랐지만, 이상하게 이해가 됐다. 단순히 나쁜 자세도 그렇고, 내 삶 전체의 흐름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음을 누군가가 가볍게 짚어준 듯했다.



진료실 벽에 걸린 포스터는 한동안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마치 국가 재난 경보처럼 굵은 글씨로 적힌 경고 문구 같았고, 원형 도표 속에는 화살표가 이어지고, 화살표에는 짧은 문구가 얹혀 있었다. 시작은 나쁜 자세로 휴대폰 사용. 너무나 사소해서 웃음이 날 정도의 문장. 그러나 그다음의 화살표들은 점점 심각해졌다.



목 굳음, 수면의 질 저하, 기운 없음, 활동량 감소, 식욕저하, 소화불량, 기분저하, 만성피로, 우울감...
그다음에는 카페인 의존, 그리고 실제 피로도 누적, 악순환의 고리가 마침내 완성된다.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니, 현대인을 향해 무언가 절박하게 외치고 있는 듯한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모두 자세 하나로 하루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무심코 반복한 습관 하나로 삶의 균형을 잃기도 한다. 그 사소함이 삶의 전체 구조를 기울게 한다는 것이 무섭도록 사실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원장님의 말은 "휴대전화는 독서하듯 봐야 합니다. 책상 앞에 바르게 앉아서요" 처음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체 누가 그렇게 휴대폰을 본단 말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말이 어딘가 날카롭게 가슴을 찔렀다. 내가 휴대폰을 보는 자세만큼이나,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 또한 늘 구부정하게 기울어져 있었던 건 아닐까. 쉬운 방향으로만 기대어 살다 보니 목뿐 아니라 마음마저 틀어진 것 같았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그 포스터가 우울감까지만 말하고 그 이후는 침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과하게 위협하거나 자극하는 문구 없이, 그저 사실만으로 사람을 멈춰 서게 하는 힘이 있었다. 자세 하나가 생과 사의 무게를 가를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하지 않은 채로 남겨둔 그 여백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며칠 동안 그 원형 도표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육체적 자세가 이토록 삶에 영향을 끼친다면, 정신적 자’는 또 얼마나 큰 힘을 가질까. 매일 사소한 선택, 작은 선택 하나가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또 더 쉽게 흔들리게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



통증은 묘하게 삶을 가르친다. 몸이 아파야 비로소 삶의 기본을 기억하게 되고, 아프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그 기본을 잊는다. 목이 아파서 찾은 한의원에서, 나는 내 삶이 기울어져 있음을 자각했다. 그래서 휴대폰을 보는 자세부터 고쳐보기로 했다. 걷는 자세도, 글을 쓰는 자세도, 마음을 쓰는 자세도. 몸을 곧게 세우려 하자 신기하게도 목이 어느 순간 부드러워졌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다.



진리는 언제나 기본에 숨어 있다. 너무 단순해서 자주 놓치고, 너무 당연해서 무시해 버린 그 기본. 그러나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늘 가장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자세 하나를 바로 세우듯, 마음의 온도도 조금만 바로잡으면 삶은 뜻밖의 방향으로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목의 통증이 가라앉아 부드러워졌다. 잃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듯이 아픔은 나를 잠시 멈춰 세우고, 그 멈춤 속에서 삶을 다시 고르게 한다. 그래서 슬픔 속에서도 작은 웃음을 찾고, 불편함 속에서도 배움을 건져 올리는 법을 배운다.



~~~---~~==~~----ㄷ


오늘도 난 곧은 자세로, 조금 더 바른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나를 지켜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기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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