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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더 더해지는 의미

중년 이후의 삶은 조금 느리도 괜찮다

by 현월안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또 한 살이 더해진다. 숫자 하나가 얹히는 것뿐인데, 묘하게 마음을 기울게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삶은 생각보다 훨씬 기특했다. 문학에 마음을 두고, 마음을 나눌 친구들을 만나고, 사랑을 배우고, 아이를 키우고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다. 살면서 힘겨움도 있었으나, 그 힘겨움이 내 삶을 쓰러뜨리기보다 삶을 내딛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이룸과 패배가 있었음에도 어느 순간도 그만두지 않았다. 모자랐던 순간들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동료들과의 대화로 책으로 채웠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바람이 또 꽃이, 그렇게 자연이 그저 묵묵히 삶의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이 길을 잃을 즈음이면, 자연은 언제나 길을 터준다.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돌아갈 방향을 비춰준다. 어쩌면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이유는, 그 앞에서는 삶이 단순하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더해질수록 삶을 향해 더 조심스러워진다.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되짚으며, 앞날을 위해 조심스러워지 그래도 해마다 새로운 꿈을 꾼다. 더 나은 성취와 더 깊은 가족의 사랑과 건강한 삶이 되도록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바라며 마음속 목록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운다. 이러한 희망은 삶을 살아가는 힘이다.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방향이 고르게 잡힌다.



세상의 통계는 내 삶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지만,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내 인생이 어느 지점쯤에 서 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세상을 따라 삶을 나눠 생각해 본다면, 이제 중년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초년은 늘 배우는 시간이었다. 뭔가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에 생의 절반이 지나갔다. 중년의 나는 이루어가야 하는 삶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협력하고, 때로는 부딪기며 때로는 화해하고, 나의 세상에 작은 흔적을 남기려 애썼다.



그렇다면 중년 이후의 삶은 어떻게 꾸릴 것인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가. 나이가 들고 보면 꿈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이루고 싶은 꿈 또한 여전히 희미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삶의 정확한 의미의 인식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비로소 알게 되는 사실은 의미가 없는 성취는 오래가지 않고, 의미가 없는 관계는 따뜻함을 잃게 되고, 의미가 없는 하루는 조용히 허무로 스며든다.



그리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지나간 인연들. 지금의 나를 이루는 관계의 따뜻한 지층들. 시간이 더해 갈수록 삶은 어쩌면 지층을 더 보듬고,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정성껏 이어가야 다. 이제 성취보다 관계를 통해 연결되는 온기를 더 기억해야 한다.



삶은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무심히 던진 미소 하나, 어깨에 가만히 얹어주는 손길 하나가 어떤 이에게는 살아낼 이유가 되기도 한다.



중년 이후의 삶은 조금 느리게 흘러가도 괜찮다. 더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더 깊어지면 된다. 이제 내가 바라는 삶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다. 크기가 아니라 밀도다. 많은 사람의 박수보다 한 사람의 진심 어린 손길과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잔잔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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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이 더해지는 것이 예전처럼 두렵지 않은 이유는, 삶이 점점 더 단순해지는 대신 더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내년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고요하게 성찰하고 조금 더 사유가 더 많은 방향으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지나온 날들처럼 앞으로의 날들도 여전히 조용하고 괜찮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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