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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시부모님의 시간

가족은 서로의 얼굴에서 사랑을 볼 수 있다

by 현월안





시댁을 향해 길을 나서는 날이면, 마음이 급해진다. 차창 너머 풍경이 흐르는 동안, 내 마음은 이미 두 분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남편의 형제는 사 남매이고 우리가 맏이다. 그래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봬야 하고 건강을 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시댁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미소 짓는 92세 아버님과 87세 어머님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환하시다. 그 미소는 두 분의 얼굴만큼 여전히 맑은 호수처럼 깊고 따뜻하다. 큰 병 없이 살아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삶이 준 감사가 얼마나 큰지, 순간 그 진실이 나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어머니의 손에는 오래된 염주가 들려 있었다. 검게 빛이 바랜 작은 구슬을 손끝으로 굴리며 어머니는 무엇인가를 낮게 읊조리셨다. 오래 사신 어른들의 기도는 희미한 바람처럼, 순수한 마음만 담긴다. 더 가지려 하지 않고, 더 오래 머무르려 하지 않고, 그저 하루를 무사히 건너고 싶은 소망. 어머니의 잔잔한 손놀림은 한평생의 강물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고, 그 아래 오래된 가르침이 고요하게 들어 있는 듯했다.



준비해 간 김장 김치와 갖가지 반찬을 꺼내어 서둘러 밥을 지었다. 끓는 소고깃국 냄비에서 김이 올라오자 집 안에 온기가 퍼지고, 그 온기는 가족 모두의 얼굴에도 물들었다. 큰아들 내외와 한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는 것이 행복하셨던지 연신 미소가 끊이질 않으셨다. 오래 함께 살아온 시부모님의 모습은, 마치 세월이 조용히 축적해 온 사랑이었다. 밥을 먹으며 가슴 한편이 살짝 저릿해지는 것은, 이런 순간이 오래가지 않을 귀한 시간임을 우리 부부는 알기 때문이었다.



식사 후 남편과 나는 조용히 집 안을 돌보기 시작했다. 남편은 오래된 전구를 갈고, 고장 난 곳을 고치고, 나는 빨래를 하고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부모님의 집에 손길을 보태고 부모의 시간에 작은 힘이 되어드린다는 것은 사랑이다. 당연히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말없이 바삐 움직이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부모님에게 따뜻한 손길이 되어주려는 사랑의 마음뿐임을 알게 된다.



시부모님은 큰아들 내외와 둘러앉아 밥을 맛있게 드신 것이 흡족하셨는지, 손끝으로 배를 토닥이며 과하게 드셨다며 웃으셨다. 그 웃음은 와줘서 고맙다는 마음의 언어였다. 부모의 마음은 때로 말보다 더 깊은 곳에서 전해지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진심이 담긴 식탁은 큰아들 내외와 나누는 사랑이다.



아버님은 공직에서 퇴직하시고 어머님이과 걸어온 삶의 시간은 묵묵히 성의를 다하셨고 긴 세월을 성실히 살아낸 삶이었다. 그 겸허한 성실이 세월을 통과하고, 두 분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는 삶을 더 깊고 단단하게 새겨놓았다. 말로 전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 되어 있다. 잘 살아오신 것에는 애써 설명이 필요 없다. 그저 살아온 날들이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한동안 말을 잃고 서울로 내 달렸다. 그러나 그 침묵은 비어 있지 않았다. 부모를 향한 안쓰러움과 지나온 삶에 대한 존중, 그리고 여전히 서로를 돌볼 수 있다는 감사가 그 침묵 속에서 조용히 반짝였다.



가족은 서로의 얼굴 속에서 서로 걸어온 삶의 윤리를 다시 읽게 된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보는 일은 내 삶을 다시 돌보는 일이고, 세월 앞에서 더욱 겸허해지는 일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래도 삶은 따뜻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일이다. 시부모님이 연세가 있으셔서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 수 있을까. 그 물음은 늘 가슴을 조이지만, 살살 다독이며 건너는 하루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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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쩌면 이렇게 소박한 하루일지도 모른다.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 얼굴에서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에게 기쁨과 위안을 작은 숨결처럼 건네는 하루말이다. 시부모님과 함께 보낸 이틀은 크지 않았지만, 사랑이 담긴 깊고 따스한 시간이었다. 오래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만 흐르는 조용한 온기,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고 보듬는 그 순간들이야말로, 세월을 견디게 하는 진짜 힘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게 서로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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